지금부터 화양연화! (4-20-일, 맑음)

지금 나는 행복한가? 현재 나의 삶은 특별한 괴로움은 없으나 매우 단조롭고, 진취적이기보다는 고착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내 삶이 단조롭고 고착된 느낌인 건 젊은 시절 내가 한 선택의 결과일까? 물론 선택이 달랐다면 결과도 달랐겠지. 그러나 그렇게 달라졌을 또 다른 삶의 결과가 지금보다 훨씬 행복했을 거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문득 내 삶을 돌아본다.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무관하게 착실하게 공부해서 판사나 의사가 되었다면 어땠을까? 분명한 건, 스무 살 시절에 강과 장, 두 선배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과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 거다. 다시 말해서 내가 학생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졸업 후 고된 노동운동가의 삶을 살지 않았다면 나는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살았을 거고, 지금보다 훨씬 (경제적으로) 윤택하게 살고 있겠지.
나에게는 생의 고비마다 조언해 주고 힘이 되어줄 멘토가 필요했다. 물론 동료와 동지는 허다했으나, 나는 스무 살 시절부터 이미 허장성세와 과잉된 자의식으로 내 감정을 사람들 앞에서 위장하기 일쑤였으므로 그들(동료와 동지들)은 결코 내 멘토가 될 수 없었다. 나만 그랬던 게 아니고 시대가 그랬고(의뭉스러웠고) 그 시대를 사는 또래들이 대체로 그러했다. 그때는 취직 따위도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언제든지 맘만 먹으면 대기업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당시 나의 모교 출신들은 취업에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그악스러운 시대는 얼치기 혁명가들에게 현실을 냉정하게 볼 수 있는 시선보다는 책에서만 가능한 혁명에 대한 감상만 잔뜩 주입하고 있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표면적으로는 나는 그 누구보다 선명한 노동자 계급의 당파성과 사회주의적 세계관을 담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면에서는 끊임없이 회의하고 갈등하고 두려워했다. 어쩌면 지금까지 나는 그렇게 겉과 속이 다른 위장된 삶을 살아왔는지 모른다.
이를테면, 혁명을 말하면서 민주당이 선거에서 승리하길 바라고, 사회주의를 말하면서 진보당(세력)의 성공 가능성을 믿지 않았다. 자꾸만 흔들리는 내면을 다잡으려고, 아니 위장한 나의 내면을 들키지 않으려고 일부러 더욱 선명한 체했고, 노선투쟁에서는 언제나 가장 급진적인 입장을 택하곤 했다. 대체로 사람들은 나에게 존경심을 드러냈고, 내 선명성을 믿었다. 보여주기식 실천도 치열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맘속으로는 끝끝내 사회주의 혁명을 믿지 않았다. 이상으로 동경하고 논쟁과 대화의 밑천으로 삼았을 뿐 현실 사회에서 혁명이 성공할 가능성은 내가 부자가 되는 것만큼이나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지만, 이미 60대가 된 나에게 그런 건 이제 별로 비중이 큰 고민이 전혀 아니다. 차라리 내 연애의 가능성이나 내 노후의 삶의 질이 훨씬 걱정되고 두려울 뿐이다. 그만큼 속물이 되었고, 소시민이 되었다.
사실 ‘그때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이라는 가정은 회한만 불러올 뿐 현실의 문제를 개선하는 데 전혀 도움 되지 않는다. ‘만약에 그녀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만약에 아들과 일찍부터 관계를 개선해 왔다면, 만약에 그때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만약에 그때 그 말을 하지 않았다면, 만약에 그때 그 일을 하지 않았다면, 만약에 그때 그곳에 있지 않았다면, 만약에 그때 그렇게 선택하지 않았다면……’ 등 후회되는 상황은 한두 경우가 아니다. 그렇다고 이 질문을 ‘그때 만약에 그렇게 했다면’이라고 바꾼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해야 할 걸 하지 못한 것이나, 하지 말아야 할 걸 한 것이나 도대체 뭐가 다른가? 그걸 구별하는 건 그저 말장난에 불과하다.
그리하여 나의 바람은, 앞으로 남은 삶 속에서는 후회 없는 선택을 하자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것이다. 머뭇거리지 말자는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이제는 조금 서둘러야 할 때다. 남은 날을 생각하고 내가 이룬 성취를 생각하면 자꾸만 조급해지기 때문이다. 일모도원, 이 말이 지금처럼 절실하게 느껴질 때도 없다. 생각이 많은 봄이다. 6월 이후, 세상이 확 달라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