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가까워진 겨울 (11-7-목, 맑음)

달빛사랑 2024. 11. 7. 19:06

 

어제 이틀 만에 또 술을 마셨다. 퇴근 무렵 상훈이가 전화해서는 말을 빙빙 돌리기에 나는 "하고 싶은 말이 술 사달라는 거야, 아니면 술을 사겠다는 거야? 만약 후자라면 다음에 만나고 싶고, 전자라면 오늘 만나줄게" 했더니, "역시 멋지셔. 당연히 전자죠" 하며 웃었다. 후배들이 술 사달라고 어렵게(아닌가?) 전화할 때마다 거절하지 못한다. 마시고 싶진 않았지만 할 수 없이 구월동 용궁정에서 6시에 만났다. 며칠 전, 싱싱한 꼴뚜기가 들어왔다고 사장인 종화 형이 문자를 보냈던 터다. 그래서 오랜만에 용궁정에 들른 거다. 용궁정은 원래 민어 전문점이었는데, 요즘에는 다양한 안주를 파는 회 포장마차로 변했다. 안주는 여전히 맛있고 밑반찬들도 깔끔했다. 하지만 매상이 예전 같지 않아 얼마 전부터 점심에 식사 손님들도 받기 시작했다는데 그게 신의 한 수였다고 한다. 왜냐하면 밥을 팔기 시작하면서 민어와 참치 등 다른 주력 메뉴들도 자연스레 홍보가 점심에 왔던 밥 손님들이 저녁에는 술 손님으로 찾아왔기 때문이다. 꼴뚜기를 시켰더니 동죽 한 냄비도 서비스로 나왔다. 나올 때 계산했더니 꼴뚜기 한 접시 값이 35,000원이었다. 시세를 몰라서 비싼 건지 싼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용궁정을 나와 상훈이와 술 마실 때의 루틴대로 '비틀즈'에 들러서 음악을 들었고, 근처 '한신우동'에 들러 우동을 먹고 헤어졌다. 

 

기온이 뚝 떨어졌다. 올가을 들어 처음으로 21도에 맞춰둔 보일러가 돌아간 걸 보면 새벽에 온도가 제법 내려갔던 모양이다.  출근하지 않는 날이라서 느지막이 일어나 냉라면을 만들어 먹었다. 어제 계획에 없던 술을 마셨기 때문이다. 낮잠은 자지 않고 하루를 보냈다. 5시쯤 누나들이 족발을 사들고 함께 먹었다. 큰누나는 식탁에 앉자마자 "너희들과 만나서 이렇게 얘기를 하니 너무 좋다. 말할 사람이 없으니 답답해서 미칠 것 같더라. 밥을 먹어도 맛도 없고. 그런데 동생들과 만나 얘기하면 기분도 풀리고 밥도 잘 먹힌다니까" 하고는 입 짧은 양반답지 않게 족발을 너무도 맛있게 먹었다. 그러면서 "겨울밤은 왜 그렇게 또 긴 거야?"라며 웃었다. 매형과 사별한 지 4개월째인데 아직은 홀로 지내는 생활이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런 누나에게 "자주 와서 같이 밥 먹어요. 가고 싶을 때까지 여기서 지내다 가도 좋고" 했더니 표정이 환해졌다. 하지만 부지런하고 깔끔한 누나는 집 걱정 때문에 오래 집을 비우지는 못한다는 걸 나는 안다. 작은누나와 함께 왔을 때에나 가끔 하룻밤 자고 가긴 하지만. 그래도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는 게 고마웠던지 "고마워 동생" 하는 표정이 자못 감동한 눈치였다. 그러고 보면 우리 큰누나처럼 세상물정 모르는 공주과 할머니들은 감동시키기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