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비 내린 날 ❙ 치과에 가다 (9-12-목, 豪雨)


점심 먹고, 정기 검진을 받기 위해 빗속을 걸어 오랜만에 치과에 들렀다. 저작과 교합 상태를 확인하고 가끔 볼이 씹힌다고 말했더니 주치의는 그라인더로 어금니 끝을 살짝 갈아주었다. 그리고 치아 면을 깨끗하게 닦아주었고 치아와 잇몸이 닿는 부분에 낀 이물질을 제거해 주었다. 그리고 사진 7장과 동영상을 찍었다. 그러면서 "관리를 잘했네요. 이렇게만 하세요. 이번에는 4개월 후에 오셔도 될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치료대 앞에 걸린 모니터를 보니 진료비가 4만 원이고 환자 부담금은 12,000원이었다. 뭐 특별히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4만 원이라니, 이래서 병원 측에서는 환자가 자주 내원해 주길 바라는 모양이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정말 의사들의 노동 가성비는 끝내준다. 하긴 의사 면허를 따기 위해 그들은 또 얼마나 힘들게 공부했을 것인가. 매일 냄새나는 환자들의 입 속을 들여다보는 일도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고. 십분(十分)까지는 아니고, 6분 정도 이해한다.
접수대로 나와 예약 날짜를 확인하고 진료비를 지불하려는데, 직원이 웃으며 "오늘 진료비까지는 병원에서 처리할 거예요. 명절 잘 보내세요." 했다. 나도 싱긋 웃으며 "고마워요. 그럼 다음에 봐요" 인사하고 나왔는데, 정거장 쪽으로 걸어가다 생각해 보니 다음 진료일은 새해 1월이다. 하, 세월 참 빠르네. 이 치과에서 진료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4달 후면 벌써 (만으로는 아니고) 햇수로 3년 차다.
치과에 갈 때는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서 원단이 넓은 골프 우산을 들고 나왔는데도 바지가 다 젖었다. 다행히 발수가 잘 되는 옷감이라서 실내에서 대기하는 동안 금방 마르긴 했지만, 젖은 바지가 가는 다리에 착 붙어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다행히 청사로 돌아올 때는 비가 다소 잦아들어 바짓가랑이가 빗물에 젖어 철벅거리는 일이 없었다. 다만 비가 오는데도 왜 그리 더운 건지, 치과에서 청사까지 오는 10여 분 사이에 온몸이 땀범벅이 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우산을 접고 그냥 비를 흠뻑 맞고 싶었다. 일부러 비 맞고 다니던 어린 시절의 낭만도 떠올리면서. 하지만 요즘은 산성비라서 낭만 따질 때가 아니라지? 낭만 좋아하다 머리털 빠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