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을 보내며 (8-31-토, 맑음)

늘 그렇지만 여름은 숨 가쁘다. 그래도 8월은 저무는 여름의 등줄기가 살짝살짝 보이는 달이어서 애증이 깊은 달이다. 이번 8월은 경제적으로 많이 손해 본 달이고, 체력적으로도 많이 손해 본 달이며, 정신적으로는 서너 가지 위로받은 달이다. 성취한 것도 있고, 곤란한(곤란하기보다는 귀찮은) 몇 가지 숙제를 완수하기도 했다. 인정에 얽매여 늘 개운찮은 마음으로 수행하던 어떤 일은 과감하게 그만두었고 까탈스러운 클라이언트가 요청한 수필집 윤문 건도 완성해서 출판사에 넘겼다. 그래서 8월을 보내는 마음이 크게 아쉽거나 불편하진 않다. 다만 8월은 내가 태어난 달이고, 아버지가 하늘에 올라가신 달이어서 8월과 헤어질 때는 다른 달보다는 조금 더 애틋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오전에는 작은누나와 함께 큰누나네 들렀다. 매형 돌아가시고 처음으로 매형의 거처에 들른 것이다. 생전 매형이 주로 지내던 2층에는 임자 잃은 고가의 오디오와 엘피, 침대와 가구들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오디오 시스템은 방마다 있었는데, 큰누나의 말에 의하면 조카 민규가 2층 작은 방 오디오는 작은삼촌(내 동생) 주라고 했다고 한다. 그간 큰누나네 궂은 일들을 많이 도와준 작은삼촌에 대한 배려였을 것이다. 한편으로 ‘왜 나에게는 물어보지도 않고……’ 하는 서운한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동생에게 가는 게 당연하다고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죽은 이의 물건에 욕심을 내는 건 산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만 옛날 내가 소장하고 있던 엘피들은 조만간 되찾아올 생각이다.
작은누나는 병원 진료 예약이 있어 9시에 나갔다가 11시쯤 장을 봐서 돌아왔는데, 그 사이에 큰누나와 둘이 오랜만에 속 얘기를 길게 나눌 수 있었다. 형제라 해도 따로 살다 보면 속 깊은 얘기를 나눌 기회가 거의 없다. 그저 명절이나 가족 대소사 때 만나 안부나 나누는 정도가 다였다. 누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누나가 얼마나 매형을 의지했는지, 또 홀로 남은 삶에 대해 얼마나 겁을 먹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지켜질지 어떨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걱정 마세요. 형제들이 있잖아요. 그리고 나도 옆에서 많이 힘이 되어 줄게요”라고 누나를 위로했다. 누나는 “고마워 큰동생”하고 말했지만, 표정은 그리 환해 보이지는 않았다. 집에 돌아올 때 큰누나는 나에게 매형이 입던 콤비 상의와 양말, 운동복과 장갑, 그리고 로열살루트(Royal Salute, 21년 산) 등을 주었고, 작은누나에게는 각종 목욕제품과 프랑스산 와인을 챙겨주었다. 오늘도 산 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물건을 나누어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