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아버지 소천 25주기 추모 예배 (8-4-일, 맑음)

달빛사랑 2024. 8. 4. 21:25

 

아버지 소천 25주기를 맞아 형제들이 가족 묘역에 모여 추모예배를 드렸다. 가만이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더운 날씨였지만, 다행히 모두 양산을 가져와 직사광선은 피할 수 있었다. 추모예배를 마치고 동생은 전지가위를 가져와 상석 앞에 심은 향나무 가지를 다듬었고 나와 수현이는 봉분 주변의 잡초를 뽑았다. 공원관리소 측에서는 추석을 앞두고 대대적인 벌초를 벌이겠지만, 그들은 예초기로 잡초를 깎을 뿐 나뭇가지를 다듬어주거나 풀을 뽑아주진 않는다.

 

부지런한 동생 덕분에 우리 묘역 화병에는 늘 환한 꽃들이 꽂혀 있고 묘역 주변도 다른 묘역과 확연하게 구별될 늘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동생은 형제들의 안부도 늘 먼저 챙기고 전화도 자주 걸어오는 든든한 막내다. 그래서 큰누나도 막내를 가장 믿고 의지한다. 뭔가 부탁하면 군말 없이 들어주기 때문이다. 또 동생은 장남인 내가 해야 할 일들도 많이 대신해주고 있다. 늘 고맙고 미안하다. 그런 착하고 성실한 아버지의 성정을 닮아 아이들도 다 착하고 공부도 잘한다.

 

현재 카이스트 대학원에 다니는 큰 조카 우현이는 곧 삼성에 입사할 것이고 작은조카 우진이는 동국대학교 4년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이번 8월에는 프랑스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가서 6개월 간 연수하고 올 예정이다. 그는 영화감독이 꿈이다. 이미 단편 영화를 만들어 상영회를 갖기도 했다. 조카들을 보면 큰아빠인 내가 뿌듯해진다. 무엇보다 우리 수현이와 조카들 사이가 너무 좋다. 외동인 수현이가 사촌동생들과 친형제처럼 지내는 일은 장차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묘역 주변을 정리한 후 우리 일행은 차를 타고 매형의 유골함이 안치되어 있는 봉안당(별빛당)으로 향했다. 일요일이었지만 고인을 만나러 온 가족들로 주차장은 무척 붐볐다. 3층 매형의 봉안당 앞에 서자 큰누나와 제수씨가 눈물을 흘렸다. 누나는 소리 내서 울었고 제수씨는 소리 없이 울었다. 같은 날 봉안된 수많은 유골함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채 우리 일행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매형 주변에 함께 봉안된 고인들 중에는 젊은 나이에 운명한 분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심지어 미처 스무 살도 안 된 어린 학생들도 더러 있었다. 생면부지의 남이지만, 유골함에 각인된 생몰년월을 읽어가다 보니 마음이 먹먹해졌다.

 

별빛당은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봉안당임에도 벌써 3층까지 봉안된 유골함으로 가득 찼다. 그나마 요즘처럼 화장과 납골하는 문화가 자리잡아 망정이지 그 많은 고인의 유해를 매장했다면 아마도 매년 산 하나씩은 무덤이 되어 사라졌을 거다. 매형의 봉안당을 찾아본 후 1층 로비로 내려왔을 때는 큰누나도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래서 막내의 제안으로 4형제가 오랜만에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사진을 찍어본 게 도대체 언제인지 기억나질 않는다. 막내와 큰누나는 나이 차이가 14년이나 되지만, 이제는 함께 늙어가는 사이가 되었다. 나와 동생의 나이 차(5년)가 무색해진 건 이미 오래 전이다. 조카의 "여기 보세요. 하나 둘 셋!" 하는 소리를 들으며 포즈를 취하노라니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물론 벅차고 좋은 감정이라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별빛당을 나온 후 일행들은 우리 동네로 와서 함께 점심 먹고 헤어졌다. 큰누나는 내 아들 수현이가 모셔다 드렸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슈퍼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사왔다. 샤워하고 아이스크림을 먹은 후 두어 시간 낮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