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고르는 장맛비 (7-21-일, 오전에 비)

오전에는 빗방울 떨어지더니 오후가 되면서 날이 갰다. 비 내린 오전은 기온이 내려가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시원한 바람이 방 안까지 불어왔다. 기분 좋은 바람이었다. 몸무게가 늘었지만, 오늘은 한풀이하듯 먹고 싶은 거 다 사다 먹었다. 마트에 들러 너구리 다섯 봉지를 샀고, 분식집에 들러 치즈김밥과 참치김밥 2줄을 샀다. 김밥이 4천 원인 걸 오늘 알았다. 김밥 두 줄을 먹을 바엔 설렁탕이나 순댓국 한 그릇을 먹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생각하니 그건 가격이나 가성비의 문제가 아니라 기호나 취향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식이라 생각하면 4천 원을 내고도 김밥을 먹는 거다. 같은 가격이거나 공짜라면, 라면보다 고기가 훨씬 가성비가 높은 음식이겠지만, 실제로 우리 아들은 어렸을 때, 고기 먹을래, 라면 먹을래 하면 라면을 먹겠다고 했다. 아이의 취향에는 고기보다 라면이 맛있게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나는 너구리 국물에 김밥 두 줄을 먹었다. 물론 너구리 면발도 먹은 건 당연한 일. 칼로리는 아마도 어마어마했겠지. 혈당도 스파이크! 운동하고 쟀는데도 220이 나왔다. 너구리도 탄수화물, 김밥도 탄수화물, 거기에다 혈당을 빠르게 상승시키는 너구리 국물을 먹었다는 것, 그러니 정상인도 높은 수치가 나올 수밖에 없었겠지만, 문제는 식사 후 한 시간 자전거를 타면서 땀을 흘린 후에 측정했는데 200이 넘게 나왔다는 건 당뇨에 훨씬 가까워졌다는 말이다. 이런 수치가 다시금 다이어트와 건강식 위주의 식단을 요구하고 있다. 기세 좋은 장맛비도 숨을 고르는데 어째서 나의 혈당 수치는 나날이 높아지는 것인지. 하지만 ‘알다가도 모르겠다’라는 표현은 양심상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수치가 오르는 이유를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혈당 관리를 안 하는 식생활을 이어가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다.
작년 이맘때 목적 의식적으로 시작한 감량과 식단관리는 꽤 성공적이었다. 혈압도 정상으로 내려와 약을 줄였고, 중성지방도, 각종 알코올 수치도 모두가 정상이었다. 혈당과 당화혈색소도 정상에 가까웠다. 몸무게를 12kg이나 감량했기 때문이다. 술자리를 삼갔고, 라면과 아이스크림을 끊었으며, 채소 위주의 식단을 하면서 쌀밥을 평소 먹던 양의 30%만 섭취했다. 그랬더니 일주일 정도 지나면서 몸무게가 급격하게 빠지기 시작했다. 두어 달이 지나자 62kg까지 감량할 수 있었다. 주치의도 놀랐고 주변 사람들도 모두 나의 결심이 지독할 정도로 대단하다며 엄지를 치켜세워 줬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감을 얻고 건강을 되찾자, 이내 자만해지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더한 건 아니지만, 감량 이전의 나쁜 생활방식으로 너무도 쉽게 되돌아간 것이다. 아이스크림은 중독됐고, 라면과 냉면은 더욱 맹렬하게 먹고 있으며, 술자리도 자주 갖는다. 그러니 다시 체중이 늘고 각종 수치가 엉망으로 나오는 것이다. 아까 저녁 먹고 체중을 쟀더니 74kg이더라. 얼추 10개월 만에 요요가 된 것이다. 이전에 다이어트와 혈당 관리하면서 기록했던 수치를 찾아보니 작년 9월 초 나의 몸무게는 65kg이었고 공복혈당은 87이었다. 지금은 말할 수 없이 증가했을 거라는 건 불문가지다. 한 번 나빠지면 좀처럼 회복하기 어려운 게 혈당 수치인데, 그렇게 힘들게 이룬 결과물을 10개월 만에 도로(徒勞)가 되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가?
물론 감량하면서 몰골이 아프리카 난민처럼 피골상접한 모습으로 변해 주변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기도 했고, 내가 보기에도 목과 얼굴에 주름이 보기 흉했고, 삶의 질이 너무 떨어져 정신적 스트레스도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담당의가 나이를 고려할 때 걱정할 만한 수치가 아니라며 당뇨에 대한 나의 위기감을 희석해 버렸다. 그 결과 관리에 게을러졌고, 당뇨와 비만의 위험성에 대해 방심하게 된 것이다. 나는 문제의 원인과 해결 방법을 모두 아는 셈이다. 그러니 이제 남은 건 의지와 실천이다. 이 또한 여름이 가기 전에 승부를 봐야 한다. 우기가 끝날 때쯤 5kg 정도 감량했으면 좋겠다. 끝날 듯하다가 다시 집요하게 이어지는 우기의 저 견고한 고집처럼 나의 의지도 견고하고 집요했으면 좋겠다. 67kg 정도로 가을 앞에 설 수 있도록 노력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