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 (3-27-수, 흐림)
생각해 보니 나는 사랑하는 이성을 위해 꽃을 사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만났던 애인들 중에는 꽃 선물을 받는 것보다 함께 술 마시는 걸 더 좋아했던 여성도 있긴 했지만, 분명 꽃을 좋아했던 여성도 한두 명은 있었을 텐데...... 그러고 보면 나는 그리 센티한 애인이 아니었던 것 같아. 물론 대화하는 건 좋아했지. 시나 편지를 써주는 것도 좋아했고, 뭔가를 만들어주는 것도 좋아하긴 했어. 하지만 로맨틱한 사랑의 끝판왕은 애인의 가슴에 시시때때로 예쁜 꽃을 안겨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오다 주웠어"라든가, 혹은 "오다 보니 당신 닮은 꽃들이 있길래 샀어"와 같은, 오글거리는 맨트와 함께 애인에게 꽃다발을 안겨주는 일, 로맨틱하잖아? 누군가는 말했지. 꽃을 싫어하는 여성은 없다고. 그런데 정말 그럴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이벤트의 대상이 되어 꽃다발을 받는 일은 내성적인 성향의 여성들에게는 무척 창피하고 부담스러운 일이었을 게 분명해. 물론 이런 경우는 사실 꽃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을 전하는 형식과 시점(타이밍)의 문제일 거야. 타이밍만 잘 맞춘다면 사소한 젤리 사탕 하나에도 상대는 감동할 수 있는 거라 생각해. 이렇게 말해 놓고 보니 연애가 참 쉬워 보이지만, 현실에서의 연애는 결코 쉽지 않다는 건 아마 후배 시인 심명수의 반려견 해피 녀석도 잘 알고 있을 걸. 아무튼 나이 더 먹기 전에 나도 꽃을 살 수 있을까? 수십 수백 송이를 사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고, 상대 역시 부담스러워할 게 뻔하니, 장밋꽃 한송이면 될 것도 같은데...... 왜냐하면 감동은 타이밍이 문제일 테니 말이야. 꽃은, 받는 사람도 기쁘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꽃을 고르는, 줄 사람의 마음도 한껏 부풀게 만들 것 같아. 나도 바로 그 '부푼 마음'을 경험하고 싶은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