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호, 맘에 드는 냄비 특템! (2-20-화, 흐리고 비)
오랜만에 민주화운동센터를 방문했어요. 작년 도화동으로 사무실을 이전한 후 올 들어 처음입니다. 먼저 있던 곳보다 공간 규모는 작았지만, 훨씬 아기자기해 보였습니다. 교육 공간도 환하고 깨끗했는데, 층고가 낮아 강좌를 진행할 때 울림이 덜해 강의에 대한 집중력은 훨씬 높아질 듯싶었습니다.
1시간가량 진행된 회의에서는 2023년도 사업 보고와 24년도 사업 계획을 논의했습니다. 시 정부가 바뀌고 예산이 50%나 삭감되어서 집행이 불투명한 사업들도 있었지만, 추경을 겨냥해서 일단 사업 계획 속에 포함시켰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올해는 청년층(청소년 포함)과 선배 세대의 대화를 적극적으로 조직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모두가 공감했지요. 두 계층은 몰라도 너무 모르거든요. 2024년도 사업 계획으로 잡혀 있던 '청년들이 선배에게 묻는다'라는 평화인권노동 강좌의 제목을 '선배들이 청년에게 묻는다'라고 바꾸어 진행하는 게 어떠냐는 의견도 나왔는데, 난 이런 역발상이 무척 신선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바꾸기보다 아예 두 가지 모두 사업 속에서 녹여내자고 제안했습니다. 즉, 선배에게 묻는 프로그램과 (선배가) 청년에게 묻는 프로그램을 둘 다 배치하여 균형 감각을 유지해 보자는 취지였지요. 모든 위원들이 공감해 주었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자활센터에서 운영하는 지하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었는데, 4,500원짜리 식사치고는 가성비가 괜찮았습니다. 특히 쫄면과 돈가스는 내 입에 잘 맞았습니다. 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이사장인 우재 형은 식사를 하면서 연신 "야, 오늘 돈가스 정말 맛있다' 소리를 연발하더군요. 교육청 구내식당과 비슷한 수준의 한 끼였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센터 사무처장 은주가 "예산이 깎여 이번 회의부터 위원님들 회의비를 주지 못해 죄송합니다. 마침 얼마 전 기증받은 키친아트 냄비가 여럿 있어 하나씩 드릴 테니 가져가세요." 하며 박스 하나씩을 전해주었습니다.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약간 슬프기도 하고, 기분이 묘했습니다. 하지만 내용물을 확인하고는 이내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렇잖아도 냄비가 필요했거든요. 우리 집에 있는 냄비들은 대부분 결혼할 때 장만했던 것들이라서 곳곳에 훈장과 상처가 많습니다. 물론 사용하는 데는 지장이 없어 아직까지 쓰고는 있지만, 예쁘고 견고해 보이는 새 냄비를 보니 기분마저 산뜻해지더군요. 회의비보다 쓸모 있는 선물입니다. 득템 한 거지요.
퇴근길에 비가 와서 사무실에 한잠 앉아있다 나왔습니다. 곳곳에서 술 마시자고 전화 오고 문자 오고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모두 사양했어요. 보운 형과 비서실장은 수홍 형과 술 마시러 백운으로 갔고, 운준은 술 마시고 싶은 걸 에둘러서 한참을 얘기했고, 다인아트 윤 대표는 갈매기에서 이동렬 선배와 같이 막걸리 한잔하려고 한다며 연락해 오고..... 비가 오니 그야말로 주향이 난무하더군요. 하루 참 숨 가쁘게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