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어떤 그리움 (2-19-월, 종일 비)

달빛사랑 2024. 2. 19. 23:23

 

서울에서 내려오던 후배 훈이가 술 사달라며 문자를 보내왔다. 아침부터 종일 비가 추적추적 내렸고, 기분도 말랑말랑해진 상태라서 술 한잔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긴 했다. 하지만 나는 다음날 중요한 회의가 예정되어 있거나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할 때는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술 마시지 않는다. 내일은 일찍 출근도 해야 하고, 오전에 민주화운동센터에서 자문회의도 잡혀 있다. 그래서 오늘은 유혹을 억누르며 쉬고 있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비 오는 날은 영락없이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걸려 온다. 거절하지 못하는 나는 결국 구월동에서 후배를 만났다. 

 

식당인지 포장마차인지 정체가 모호한 (식당 이름도 '부대찌개 속 포차') 식당에서 부대찌개를 주문하고 소주를 마셨다. 1인분에 9천 원. 그런데, 달걀프라이에 공깃밥, 두부부침과 명란젓, 오이무침, 인삼절임(?), 진미채무침 등등 대여섯 가지 반찬이 나왔다. 맛도 좋고 가성비도 좋은 식당이었다. 훈이가 굳이 이곳으로 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자신이 발견한 핫플레이스를 나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주인도 인품이 좋아 보이고, 아직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사람도 많지 않아 구월동에 나오면 단골로 삼을 집이 또 하나 생긴 셈이다. 위치도 밴댕이 골목 '용궁정' 맞은편이어서 접근성도 매우 좋다. 식사와 함께 소주 2병을 나눠마시고 식당을 나왔다. 훈이도 나도 2차 갈 생각이 별로 없어서 예술회관역 횡단보도 앞에서 그대로 헤어졌다. 어차피 토요일 제고 연세대 동문 모임에서 상훈이는 또 보게 될 것이다. 오늘 훈이는 술보다는 밥을 함께 먹고 싶었던 것 같다. 자기가 발견한 가성비 좋은 술집도 자랑할 겸해서 말이다. 또 하나, 나는 혼밥을 싫어하지 않는데 훈이는 혼밥을 무척 싫어한다. 그래서 그는 가급적 누군가와 함께 식사하고 싶어 한다. 서울에서 내려오면서 아마도 내가 생각났겠지. 편하게 밥 사줄 사람은 나밖에 없을 테니...... 나 또한 넉넉하진 않지만, 나와 함께 밥을 먹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따뜻한 한 끼 밥을 사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한다. 

 

일찍 귀가해 운동하고 샤워했더니 기분이 좋아졌다. 소주 한 병쯤은 반주로 마실 만하다. 내일 일정에도 전혀 영향이 없을 듯. 오늘처럼 1차로 술자리를 끝내고 귀가하는 일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럼 술도 맛있고 사람들과도 더욱 즐겁게 마실 수 있을 것 같은데..... 물론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