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 (2-7-수, 薄霧)

며칠째 날이 춥다. 입춘이 지났으니 꽃샘인 셈이다. 명절이 다가오고 있지만, 특별한 감흥은 없다. 작년부터 명절이나 부모님 기일에 모여 추도예배 보고 함께 식사하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매번 제수씨에게 기일과 명절 음식 준비를 부탁하는 것도 미안했고, 또한 종교가 없는 조카들에게까지 백부와 조모의 신앙을 강요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1년에 두어 번 가족 묘역에 모여 부모님께서 애창하던 찬송가를 부르고 함께 예배 보는 일은 생전 우리를 사랑하셨던 그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존경과 예의로 생각해 달라고 부탁했다. 각자 원하는 바가 있었겠지만,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의 제안이라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내 부탁이 무척 단호하게 보였는지 동생 내외와 자녀들도 기꺼이 동의했다. 지난 1월 말 우리 가족들은 엄마 3주기 기일과 갑진년 설을 겸한 모임을 가족 묘역에서 이미 가졌다. 매형과 동생네 가족, 나와 아들 등 7명이 모여 조촐하게 추모예배를 드리고 우리 집 근처로 이동해 함께 식사하고 헤어졌다. 그러니 이번 설날에는 나를 찾아올 사람도 없고, 누군가 만나자고 연락해 오면 모를까, 특별히 찾아갈 곳도 없다. 외롭다기보다는 편하고 고즈넉한 명절이 될 듯하다.

교육청도 설 분위기가 물씬 난다. 어제는 명절마다 직원들에게 주는 선물이 도착했고, (나는 매번 대천김을 선택한다.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김 만한 반찬도 없다. 양도 많고 맛있다) 오늘은 많은 직원이 청에서 대절한 관광버스를 타고 교육청과 MOU를 맺은 전통시장으로 명절 장보기 행사를 위해 일제히 떠났다. 사무실 스피커에서는 일정을 알리는 광고 방송이 오전부터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나도 내일 오전에 치과 진료를 받고 곧바로 퇴근해서 설 연휴에 들어갈 생각이다. 긴 연휴 동안 뭔가 한 가지 의미 있는 일을 성취하고 싶은데, 뭐가 좋을까. 술이나 먹고 힘들어 퍼져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예년에는 그저 영화 보고 청소하고 갈매기 나가서 술 마시는 일로 명절 연휴를 보냈지만, 이번에는 좀 색다르게 보내고 싶다. 영화를 보더라도 감독 한 명을 특정해서 그의 대표 작품을 모두 감상해 볼까? 아니면 시집에 들어갈 시들이나 정리할까?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지인들에게 연락해 볼까? 크게 생활이 달라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명절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