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행복합니다, 고맙습니다 (1-22-월, 흐림)

달빛사랑 2024. 1. 22. 20:51

 

 

오후에 출근했다. 비서실에서 요청한 일도 있고, 연말정산 서류도 제출해야 해서 계획에 없던 출근을 하게 된 것이다. 우선 2월에 정년퇴임하는 박 모 교육장의 퇴임 기념 교육감 축사를 작성해 비서실에 보내주고, 곧바로 연말정산 서류를 정리해야 했는데, 컴퓨터가 미숙한 보운 형의 서류까지 챙기다 보니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보운 형은 "내가 손이 참 많이 가지요?" 하며 미안해했는데, "아니에요. 그게 뭐가 힘들다고...."라고는 했지만, 매번 이렇듯 챙겨야 하는 일이 귀찮은 건 사실이다. 내가 뭔가에 집중하려 할 때 "문 동지, 이건 어떻게 하는 거지요?" 하면서 질문을 해오면 해당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집중했던 리듬이 순식간에 깨진다. 형의 질문을 처리해주고 나면, 나의 문제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건 무척이나 귀찮고 효율이 떨어지는 일처리 방식이다. 하지만 귀찮은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강하게 도리질을 하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지'라며 스스로 되뇌곤 한다.❚

 

나도 처음 청에 들어왔을 때 각종 문서 기안하는 법과 서류를 상신하는 법을 몰라 비서실장이나 젊은 보좌관들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때마다 그들은 일부러 시간을 내어 모든 걸 친절하게 설명하면서 내가 빨리 업무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사실 낯선 시스템을 어려워하는 것은 나이 든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그건 단지 그들이 시스템에 미처 적응하지 못했을 뿐이지 그들의 성실성과는 무관한 일이다. 노인들이 카페나 영화관에서 키오스크로 주문을 할 때 낯설고 어려움을 느끼는 것과 같은 경우다. 적어도 나는 얼리어댑터라고 스스로 자인해 온 사람 아닌가. 그런 나도 낯선 시스템에 당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현장 노동자 출신이자 대공장 노조위원장이었던 보운 형은 오죽하겠는가. 그래서 앞으로도 기꺼운 마음으로 형을 도우려 한다. 그게 의리고 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운 형과 비서실장이 부평에서 수홍 형과 K 목사를 만나 술 한잔하기로 했다면서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저께도 술 마셨는데 사흘 만에 다시 술 마시는 게 부담스러워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리고 이상하게 부평은 멀게 느껴진다. 전철 타면 집까지 서너 정거장인데도 희한하게 정서적 거리감이 느껴진다. 이건 청소년 시절부터 느끼던 오랜 연조의 거리감이다. 부평은 인천 시내와는 다른 동네처럼 느껴지는, 그 희한한 이질감, 그래서 그런가 부평에서 술 마시면 쉽게 취하거나 일찍 집에 들어오게 된다. 아마 구월동에서 만나기로 했다면 분명 합석했을 것이다. 설명하기 참 어려운 심리상태다.❚ 

 

기온이 그야말로 '뚝' 떨어졌다. 체감온도가 영하 14도니 중대형급 추위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날씨에 반바지 차림으로 집안을 돌아다닐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고맙고도 미안한 일인가. 현관문을 열 때마다 거실 창문 앞에서 모여 살고 있는 화초들이 "고마워요. 겨울을 따듯하게 날 수 있게 해주어"라며 인사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화초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겠지? 혹서든 혹한이든 사람의 영혼마저 훼손할 정도로 강력한 날씨 앞에서 그래도 온전히 영혼을 지켜내고 충분히 시원하고 기분좋게 따듯한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것은, 그런 조건이 가능하도록 해주는 누군가의 숨은 노력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모든 것을 잃고 절망에 빠졌던 내가 그나마 새로운 직장을 얻고 지금처럼 나만의 공간에서 편한하게 생활할 수 있는 데에는 엄마의 기도가 큰 힘이 되었다는 사실 또한 기억할 일이다. 그러니 생각해 보라. 내가 뭐라고..... 나처럼 부족하고 문제 많은 사람조차 이렇듯 큰 행복을 누릴 수 있다니, 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내 삶은 맨 고마워할 일 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