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문화 도시의 꿈을 자꾸 짓밟는가 (12-18-월, 맑음)

누가 ‘문화도시 인천’에 관한 꿈을 자꾸만 짓밟는가?
인천문화재단 이종구 대표이사가 얼마 전 사의를 표명했다.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지역 언론과의 각종 인터뷰를 통해 문화도시 인천에 관한 다양한 비전을 제시하며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던 것과는 사뭇 다른 행보여서 많은 이들은 그 배경에 의혹의 눈길을 보낸 바 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지난 12월 14일, 경인일보와의 인터뷰 기사에서 그는 시 정부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았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밝혔다. 공공기관의 대표이기도 하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이기도 한 그의 작가적 자존심이 민선 8기 시 정부 공무원 서너 명과 그에 뇌동한 몇몇 의회 권력에 의해 얼마나 깊고 지속적으로 훼손되었는지 상상이 되고도 남았다.
물론 인터뷰에는 인터뷰 대상자의 주관적 견해가 일방적으로 기술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종구 대표이사의 성품을 잘 알고 있는 지역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오히려 그가 언급한 내용들은 실제 당한 부담감과 모멸적 상황의 극히 일부일 거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하고 있다.
만약 ‘사퇴 압박’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시의 출연기관이라 하더라도 문화예술 지원단체인 문화재단은 사업의 성격상 그 독립성이 엄격하게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퇴 압박은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라는 팔걸이 원칙에도 어긋난다. 만약 시 정부에서 지원금과 인사권을 무기로 재단 길들이기를 시도한 것이라면, 그것은 매우 시대착오적인 행태이며 문화예술의 본질을 망각한 엄중한 사안이다.
그리고 시민을 대리해서 시 정부의 행정 전반과 정책을 감시해야 하는 의회의 일부 의원들이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믿고 싶지만) 시 정부와 정치적 입장이 같다는 이유로 각종 ‘전횡’에 힘을 실어준다면 풀뿌리 민주주의인 지방자치제도의 존립 근거마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인천시가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의견을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폐지, 축소하기로 했던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사업도 그렇다. 예술가들의 반발이 클 거라는 걸 알면서도 공론화 과정 없이 무리하게 추진하려 한 그 배짱도 황당하거니와 예술가들의 레지던스 공간에 커피전문점 스타벅스를 입점시켜 (성사되진 않았지만) 돈을 벌어보겠다고 한 발상은 도대체 인천시 정부에 일관된 문화 정책이나 예술 마인드가 티끌만큼이라도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문화와 예술 영역은 현실 정치와는 성격이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는 걸 왜 모르는 걸까. 21세기에도 한결같이 진영논리에 결박된 채 정치의 희생양이 되곤 하는 문화예술의 현실을 바라보는 일은 얼마나 슬픈 일인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부가 나서서 관리하고 통제하는 시스템에서 성숙한 문화와 아름다운 예술이 싹튼 적은 없다. 어리숙한 정부일수록 감독과 통제를 착각한다. 감독은 일이 제대로 진행되는 지를 지켜보고 그 일의 순조로운 진행을 위해 부족한 것은 무엇인지 살핀 후 지원하고 길을 터주는 것이다. 예산과 사업권을 무기로 복종하게 만들고 일방적인 정책을 강요하는 것은 감독이 아니라 통제일 뿐이다.
블랙리스트 파동이 왜 불거졌는가를 생각해 보라. 바로 지원을 매개로 예술가들을 정권의 입맛에 맞게 길들이려 했기에 발생한 문제 아닌가? 이러한 저급한 통제방식은 항상 부메랑이 되어 권력의 심장을 타격하게 된다. 역사가 증명한 사실이다.
나는 여전히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시 정부의 문화정책과 예술 지원에 관한 진정성을 믿고 싶다. 그러나 신뢰감은 선언한다고 담보되는 게 결코 아니다. 구체적인 정책 제시와 실천 의지를 통해 자신의 진정성을 증명해야만 한다. 앞에서는 ‘문화예술 만세’를 선언하고 뒤에서는 문화예술을 도구화하거나 시 정부의 치적을 위한 치레로 활용하려 한다면 신뢰는 고사하고 문화예술인들의 집요한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안타깝지만 문화재단 대표이사의 사퇴는 기정사실이 되었으니 되돌릴 수는 없는 일, 하지만 지역 문화예술인들은 차후 새로운 대표이사 선임 과정과 재단 관련한 시 정부의 태도를 엄중히 지켜볼 것이다. 문화재단은 시 정부의 것이 아니라 시민의 재산이자, 시민들의 문화예술 향유를 위한 현장 지원 단위이다. 이 점을 시 정부는 확실히 인식해야만 할 것이다.
아울러 의회 의원님들 역시 인천 문화예술의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냉정하게 돌아보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문화와 예술을 모르면 차라리 가만히 있거나 공부 좀 하시고. 시민의 뜻을 대변하라고 뽑아놨더니 쓸데없이 몰려다니며 세금만 축낸다는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공부해서 문화 예술적 식견을 넓히길 바란다. 문화도시 인천의 시의원들이 무식하단 소리를 들어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