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은 계산동, 저녁은 구월동에서 (12-11-월, 종일 비)


보운 형과 나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1달에 한두 번씩 전(前) 비서실장 박 모와 밥을 먹는다. 친하게 지내다 건강상의 이유로 청을 떠난 박과의 정리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보운 형과 내가 특보로 임명되어 처음 청에 들어왔을 때,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챙겨주며 우리가 쉽게 교육청에 적응할 수 있도록 살뜰하게 배려해 준 사람이 바로 박 실장이다. 물론 박과 나는 그가 민주노총 사무처장으로 일할 때부터 잘 알고 지내던 사이다. 전교조 조합원으로서 교육민주화를 위해 치열하게 활동하던 그는 5~6년 전, (어제 아들을 결혼시킨 대우자동차 노동자) 후배 창곤이가 민주노총 인천지부장을 맡았을 때, 사무처장으로 일하며 창곤과 함께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활동하다가 나보다 6개월 먼저 교육청에 들어왔다. 전교조와 민주노총 활동 당시에 그가 보여준 훌륭한 인성 때문에 많은 동료들은 그를 좋아하고 항상 기억한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쓰며 "그류?" 하며 씩 웃을 때는 아무리 냉정한 사람이라도 마음이 말랑말랑해지지 않을 수 없다. 단언컨대!
계산동 국밥집('어리버리 소머리국밥')은 보운 형의 단골집이다. 몇 달 전부터 보운 형은 이곳 국밥집 얘기를 자주 했다. 자신이 다녀본 국밥집 중 최고라며 "문 동지, 언제 한 번 가요"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자주 해, 정말이지 꼭 한 번 가 보고 싶었다. 혈당 관리 때문에 자제하고 있지만 사실 순댓국, 돼지국밥, 설렁탕, 해장국, 소머리국밥 등 모든 국밥을 나는 무척 좋아한다. 차로 40여 분 달려가서 간신히 주차하고 식당 문을 여니 이미 1층은 손님들로 만원이라 2층으로 올라갔다. 점심시간이라 식당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그래도 간신히 창가 쪽으로 자리를 잡고 국밥을 주문했다. 보운 형은 나와 박 실장에게는 소머리국밥 '특'을 시켜주었고 본인은 양이 많아 다 못 먹는다며 보통을 주문했다.
잠시 후, 국밥이 나오고 몇 숟가락 떠먹었을 때, "와, 이건 찐이다!"라는 말이 자연발생적으로 터져 나왔다. 내가 먹어본 국밥 중에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맛이었다. 국물은 물론이거니와 안에 담긴 내용물(소고기)이 너무도 부드럽고 맛이 있었다. 노인들이 많이 눈에 띄었는데, 이가 부실한 노인들이 잇몸만으로 우물우물 씹어도 수월하게 씹힐 것처럼 고기가 부드러웠다. 보운 형 말대로 내용물의 양도 넉넉했다.
보운 형은 "사실 나는 국밥도 맛있지만, 이 집 김치가 너무 맛있어서 자주 오고 싶다니까요"라며 김치를 먹어보라고 권했다. 사각사각 씹히는 겉절이 김치와 간이 적당히 든 깍두기는 보운 형 말대로 일품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의 김치 맛은 다른 맛집 식당에서도 맛볼 수 있는 맛이었고, 게다가 조미료 맛도 약간 났다. 김치맛은 호불호가 갈릴 듯했다. 하지만 국밥만큼은 최고였다.
차를 타고 오면서 박과 내가 정말 맛있었다고 말하자, 보운 형은 "그것 봐요. 내가 맛있을 거라고 했잖아요" 하며, 칭찬을 기다렸던 아이 같은 표정으로 환하게 웃었다. 비도 오고,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기 때문에 커피 마시러 카페에는 갈 수 없었다. 박은 청사 안으로까지 들어와 현관 앞에 차를 대고 우리를 내려주었다. 비가 오고 있기 때문에 배려한 것이다. "12월 다 가기 전에 한 번 더 봐요" 차를 돌리며 던진 박의 말에 보운 형과 나는 "그래요." 대답하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요즘 이곳저곳에서 너무 많이 먹고 다닌다. 현재 나의 목표는 살을 찌우는 것이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반갑고 맛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저녁에는 구월동 일식집에서 교육감과 특보들의 만찬이 있었다. 오래전 다인아트에서 잡지 만들 때, 몇 번 들러봤던 곳인데 비교적 회가 깔끔하게 나오는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가격 대비 가성비는 높지 않다. 접대하는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라서 그럴 것이다. 어차피 접대하는 이들은 가격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을 테니까. 아니 맛이 아무리 좋아도 가격이 지나치게 싸면(가성비가 높으면) 오히려 접대받는 이가 '혹시 나를 하찮게 보는 건가' 하고 오해할 수 있을 테고. 사실 웃긴 말이다. 접대 문화도 달라져야 한다. 아무튼 아무리 중저가 생선이지만 밴댕이와 병어도 엄연한 생선, 지난 주말에도 생선회를 먹었는데, (아, 굴도 먹었다) 오늘도 회를 먹었으니 몸이 놀라겠다.
특보들의 식사자리란 대개 그렇다. 즉, 나이 든 대선배가 한마디 하면 '그렇죠, 암요, 그렇고 말고요' 하며 고개를 주억거리다 술잔을 돌리는, 뭐 그런 그림의 연속이다. 특히 그 '대선배'가 꼰대처럼 자신의 말만 눈치 없이 길게 늘어놓으면 정말 모진 시간이 되는 것이다. 다행히 오늘은 중간급 선배인 오 정무특보가 적당히 말을 끊고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해서 그다지 지루하진 않았다. 무엇보다 대선배인 전 구청장 출신 특보는 연세가 80이 넘었으니 일장연설을 해도 한 번쯤은 참아줄 용의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상근 하지 않는 특보들이라서 일 년에 두어 번밖에 볼 수가 없다. 앞으로 두어 개의 모임이 더 남아 있는데, 하나는 갈매기 다른 하나(제고 산우회)는 역시 횟집이다. 겨울에는 만만하게 횟집인 모양이다. 이러다 지느러미 생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