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어떤 데자뷔 (8-22-화, 잦은 소나기)

달빛사랑 2023. 8. 22. 20:10

 

다소 누그러졌지만, 한낮의 햇볕은 여전히 강강하다. 칩거하기 시작하면서 저녁이면 자주 전화를 받는다. 술 마시다 취해서 전화하는 후배, 술 마시러 가면서 전화하는 친구, 술 마시다 내 얘기 나왔다며 전화하는 선배, 다음 달에 지리산을 가자는 후배, 공연이 있다며 연락해 온 지인, 단골집 사장, 격조한 후배들.... 그리고 나는 솔직한 내 상황을 이야기하며 나가지 못하는 것에 관해 양해를 구한다. 10중 여남은 명은 "어쩌나, 문계봉도 이제 다 됐네."라든가, (후배의 경우) "에고, 이왕 관리 들어간 거 잘하셔서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요."라는 말을 하며 전화를 끊는다. 이렇듯 잊지 않고 기억해 주는 건 고마운 일이다. 잊히지 않고 기억된다는 건 관계가 여전히 이어져 있다는 말일 테니까. 그러면서 잠깐 생각한다. '다 됐다'라는 의미는 무얼까. 그건 아마도 건강을 돌보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가던 시절이 끝났다는 말일 것이다. 이제는 그야말로 '살기 위해' 많은 걸 포기하고 관리하며 살아가야 하는 시간이 시작되었다는...... 그래, 그건 분명 슬픈 일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자기 삶에 대해 비로소, 혹은 다시금 치열해질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다. 삶의 긴장감과 치열함을 잊지 말고 살라는 시간의 경고, 나는 그 경고 속에 담긴 선의를 믿기로 했다. 나를 아는 이들이 내게 보내는 선의로 충만했던 아름다웠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나 또한 기꺼이 내 가장 내밀한 속내를 상대에게 고백해도 부끄럽지 않던 시절, 그 시절에 만났던 시간의 표정을 똑똑히 기억한다. 최근 운동을 다녀올 때나 산책을 할 때, 또는 잠자리에 들어 머리맡 책을 끌어당길 때, 오래전 나에게 우호적이었던 그 시간의 얼굴, 선의의 표정이 보였다. 잠시 멍해지기도 했으나 이내 기분이 좋아졌다. 이런 기시감은 언제나 환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