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시인 이권 선배 (03-22-수, 흐렸다 맑았다)


가령 이권 시인과 같은 좋은 선배를 만나는 일, 뭔가 제 욕심만 챙기는 빤질빤질한 인간들의 홍수 속에서 이권 선배 같이 무해하게 맑은 사람을 만나는 일은 헝클어진 정신을 정화하는 효과가 있다고나 할까요. 5년 전에 시집 해설을 써 주었기 때문에 그의 시가 얼마나 순정한 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 시집 또한 그런 점에서는 달라진 게 없는데 다만 차이가 있다면 호흡이 약간 길어졌더군요. 나이 먹을수록 시가 길어지는 건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시가 길어지는 건 압축과 추상보다 뭔가를 자꾸 설명하려는 산문적인 욕망이 승하기 때문이거든요. 그렇다면 그것은 세상을 추상적으로 보기보다는 구체적으로 보려는 세계관의 발로일 수 있지 않을까요? 리얼리스트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는 거지요. 세상이 많이 바뀌어 이 시점에 다시 리얼리즘 혹은 리얼리스트의 삶을 언급하는 건 어쩌면 지난 시대에 발목잡힌 낡은 시인이라는 딱지가 붙은 공산이 큽니다만, 세상의 성격이 리얼리스트를 요구하던 시대와 크게 다를 바 없어진 요즘, 광장의 함성과 작가적 실천이 새삼 그리워지는 건 사실입니다. 하여 나는 이권 선배의 길어진 호흡은 간결함과 운율을 미덕으로 갖는 시 본래의 성격에 게을러졌기 때문이 아니라 시대가 요구하는 문학적 실천에 온전히 복무하기 위한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또 다른 근거는 문학과 인간이 별로 어긋남이 없는, 다시 말해서 이 타락한 시대, 자본의 공세에 기꺼이 머리를 숙이는 허다한 시인들이 횡행하는 이 물신의 시대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문학적 지조를 지키는 몇 안 되는 문단의 선배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에게는 여러 면에서 본받을 게 많은 선배입니다.
점심은 비서실 식구들과 삼계탕을 먹었습니다. 날은 흐리고 맑기를 반복했고요. 먼지는 오늘도 극성이었으며, 기온이 많이 올라 평소의 옷차림으로 출근한 나는 무척 더웠습니다. 어젯밤 캘린더 어플이 깜빡 잊고 있던 이권 선배와의 약속을 알려주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교육청 동료들은 커피를 테이크아웃해서 산책을 갔고 나는 권이 형을 만나러 갈매기 근처로 내려갔습니다. 약속 시간 10분 전쯤 권이 형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작가회의 회장 병걸이와 함께 있다는 전화였습니다. 두 사람은 약속 장소인 이디야 커피점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길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식사 전이어서 근처 함춘원에 들러 간짜장과 탕수육을 주문해 먹었고, 반주로 고량주 한 병을 나눠 마셨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갈매기에 들렀더니 형수가 몸살이라 목요일까지 장사를 안 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종우 형은 주방 안에서 뭔가를 부지런히 하고 있었습니다. 청소를 하려는지 홀의 의자들을 모두 책상 위에 올려놨더군요. 할 수 없이 대로변으로 나가 최근 새로 생긴 커피 전문점 'PD'에 들러 바닐라 라떼와 초코라떼를 주문해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3시쯤 장애인 콜을 불러 병걸이를 먼저 보낸 후, 형은 영종도 들어가는 직행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로 향했고 나는 청으로 들어와 업무를 보았습니다. 퇴근 후에는 이발을 할까 생각했는데, 단골 미장원도 문이 잠겼더라고요. 오늘은 내 단골집들이 다 문을 닫았네요. 쉬는 날인 내일 일찍 미장원에 들러볼 생각입니다. 운동 갈까 하다가 그냥 집에서 실내 자전거를 90분간 탔습니다. 땀은 충분히 흘렸고요. 이제 간헐적 단식과 소식을 실천해볼까 합니다. 그나저나 낮잠을 안 잤으니 오늘은 숙면할 수 있을까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