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인천집'에서 친구들과 만나다 (03-20-월, 최악의 먼지)

달빛사랑 2023. 3. 20. 20:42

미세먼지 경보가 발령되었다. 도시는 먼지와 안개가 완전히 장악했다. 청사 옥상에서 바라본 지척의 시청은 먼지에 싸인 채 실루엣만 어렴풋이 보일 뿐이었다. 함께 있던 비서실장은 “문학산은 어디로 사라진 거야” 하며 놀라워했다. 추위가 끝나니 먼지가 왔다. 절기상 내일이 춘분인데 봄다운 봄은 여전히 멀다.

 

 

실천문학이 결국 고은 시인의 시집 발간을 사과했다. 1월 말경의 일인 데 오늘에야 알았다. 자숙의 의미로 계간 『실천문학』도 연말까지 휴간하기로 했다는데, 사과는 당연히 잘한 일인지만 계간지 휴간은 좀 성격이 다르다. 울고 싶을 때 뺨 때려준 격이라 할까. 안 그래도 재정난, 필진 고갈 등 여러 문제로 어려움을 겪던 잡지였다. 잡지의 역사가 길고 극적이지 않았다면 회사 측에서는 버리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을 것이다. 잡지 아니더라도 여전히 옛날의 광휘를 보존하면서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잡지들이 여러 권이니까. 하지만 계간 『실천문학』은 저항문학의 상징이자 문학적 실천의 유력한 매개였다. 아무리 '미숙한' 사장이라도 그러한 역사를 외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다만 엄중한 역사적 의미와 시대적 책무를 감당하기에 현재 실천문학사의 역량이 너무도 보잘것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퇴근 후, 고등학교 동창 기홍과 희열을 인천집에서 만났다. 갈매기를 놔두고 인천집에서 만나는 게 신경쓰이긴 했지만, 내가 잡은 약속이 아니라서 잠자코 있었다. 안주의 종류와 질 면에서 인천집이 갈매기보다 위에 있다는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친구 기홍은 내가 갈매기 단골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인천집을 좋아하면서도 선뜻 장소를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눈치였다. 그래서 내가 "고민하지 말고 인천집으로 해"라고 툭 던졌더니 "그럴까. 인천집 코스 안주 괜찮지" 하며 덥석 받았다. 코스별로 나온 안주는 두부, 가자미튀김, 모둠회, 매운탕이었는데, 셋이서 막걸리 5병, 소주 5병을 먹는데 부족하지 않았다. 이번 만남은 얼마 전 중국 출장을 다녀온 기홍이가 마련한 자리였다. 고비도 있었지만 십수 년째 유리 관련 사업을 잘 꾸려오고 있는 중이다. 희열이 역시 구리 관련 사업을 해오고 있다. 몇 년 동안 무척 고전하다가 얼마 전부터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는데 현재는 어떤 상황인지 잘 모른다. 사업하는 친구들과 만났을 때 본인이 먼저 꺼내지 않는 이상 나는 사업에 관해 구체적으로 묻지 않는다. 둘 다 의리파 친구들이라서 고교 졸업 이후 꾸준히 만나온 친구들이다. 특히 이 친구들은 등산 모임을 함께 하면서 더욱 친해졌는데, 다만 자존심과 고집이 센 기홍이가 당시 산우회 집행부와 다투고 나가서 지금은 따로 산에 다니고 있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그럴 때 보면 꼭 초딩들 같다는 생각이다. 아무튼 오랜만에 원없이 수다를 떨었다. 이 친구들 만나면 과음하게 된다. 많이 먹어도 다른 사람들과 먹을 때와는 달리 덜 취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