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모두 봄이 멀지 않았다고 말들 하지만 (02-18-토, 흐림)

달빛사랑 2023. 2. 18. 20:45

 

흐리고 바람 불어 날은 을씨년스러웠지만, 방에 틀어박혀 보내는 주말은 무척 평화로웠습니다. 세상의 모진 바람과 잡소리들이 저 현관문 하나를 못 넘는 것이 신기합니다. 내 방에 있는 동안 나는 안전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봄이 멀지 않았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왜 이리 봄은 더디게 오는 거지?’라며 조바심 내는 것 같습니다. 사실 봄은 이미 저만치 와 있는데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도 몰라요. 가는 겨울의 날 선 기승에 잠시 주춤하고 있거나 이곳으로 오는 도중 만난 여전히 잠든 사물을 깨우느라 아직 이곳에 닿지 못한 것일 수도 있고요.

 

언제 오더라도 반드시 봄은 오겠지요. 다만 계절의 봄 말고 우리 삶의 다른 부면에도 한결같이 봄이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만, 그건 여전히 요원한 듯 보입니다. 정치는 지리멸렬하고 물가는 치솟고 북한은 또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며 실력행사를 하고 있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튀르키예에서 발생한 미증유의 지진은 우리의 말문을 막아 버렸습니다. 신이 이곳을 버릴 작정을 하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비극이 하루아침에 도래할 수 있다는 말인지요. 봄은 이미 왔으나 우리가 영춘(迎春)의 노래를 소리 높여 부를 수 없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일 겁니다. 세상이 흐리고 흉흉하니 자꾸만 방안의 평화에 자족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래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어요. 방 밖의 세상에 관심을 두고 끊임없이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고 분노해야 한다는 걸 모르지 않아요. 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내 집 현관 안쪽의 평화에 침윤되어 문밖에서 벌어지는 비극과 부조리에 눈과 귀를 닫아버린다면 세상은 더욱 흐리고 흉흉해진다는 건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런데도 나는 자꾸만 더디 오는 봄을 탓하며 몸을 움츠릴 뿐입니다. 방 안에서 누리는 나만의 평화에 자족하고 있습니다. 모두 봄이 멀지 않았다고 말들 하는데,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위로해 줄 진정한 봄은 도대체 어느 굽이쯤에서 꾸물거리며 이토록 게으름을 피우는 건지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