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여정! (01-13-금, 종일 비)
금연 나흘째, 아침저녁으로 목이 훨씬 편하고 호흡하기도 좋다. 교육청에서는 담배 동기 비서실장과 여전히 옥상에는 함께 올라가지만, 나는 차를 마시고 그는 담배를 피운다. 그것만큼은 해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말벗이 필요한 60대니까. 처음에는 '설마 진짜 금연하겠어?' 하는 의구심을 보였던 비서실장도 나흘째가 되니까 별 말이 없다. 나 역시 "금연합니다"라고 명시적으로 선언하지 않았다. 40년을 흡연한 사람이 이제 겨우 나흘째 금연하고 있다고 너스레 떠는 것도 우습지 않은가? 아무튼 나흘째가 되니 뭔가 기록 경신에 대한 욕심이 생긴다. 특히 해비 스모커 앞에서도 흡연 욕구를 이겨냈을 때는 기분 좋은 성취감까지 느껴졌다. 이러한 긍정적인 욕심과 성취감 때문에 힘든 결심과 실천을 감당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오후에는 다인아트에서 보낸 320쪽 분량의 원고를 교정했다. 지난주에 이미 교정 완료해서 보낸 원고인데, 출판사에서 교정항목을 수정한 후 제대로 수정되었는지, 혹시 못 보고 지나간 건 없는지 등을 다시 확인해 달라며 보낸 것이다. 교정 내용은 잘 반영된 것 같았는데, 역시나 꼼꼼하게 본다고 했는데도 다시 보니 놓친 오탈자가 또 발견되었다. 박사님들의 글이나 문학가의 글조차도 서너 번의 교정이 필요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몰라서 하는 실수(지식과 정보의 오류)가 아니라 모르고 하는 실수(타이핑 오류나 순간적인 착각으로 인한 오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4시쯤 완료해서 출판사에 보내준 후 다소 일찍 퇴근해서 집으로 왔다. 저녁을 먹고 쉬려고 할 때, 다인아트 윤 대표가 소주 한잔하자며 연락해 왔다. 솔직히 피곤하고 귀찮아서 나가기가 싫었지만 서울에서 오는 길이라며 집 앞에 차를 대고 기다릴 테니 나오라고 했을 때는 거절하기 어려웠다. 결국 그녀의 차를 타고 갈매기에 가서 막걸리 한 병과 소주 두 병을 둘이서 나눠 마셨다. 배가 고팠는지 안주를 무려 세 개나 시켰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반 이상을 남긴 채 나와야 했다. 술에 관한 한 5분 마라도나인 (초반에는 마구 달리다가 조금만 지나면 금방 지쳐버리는) 그녀가 조는 것 같아서 8시쯤 갈매기를 나왔다.
그녀와 헤어진 후 혁재에게 전화했더니 예상대로 동화마을에 있었다. 택시를 타고 이동해 혁재를 만났다. 산이도 있었고 잠시 후 선아도 나타났다. 술은 거의 마시지 않았다. 그런데도 혁재는 연신 안주를 만들어 내왔다. 내가 잘 먹지 않으니 혁재는 마지막으로 내온 과메기를 배추에 싸서 입에 넣어주었다. 고소한 과메기 맛과 새콤한 초장 맛이 어우러져 맛이 괜찮았다. 우적우적 씹으며 혁재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맛있어요?" 하는 표정으로 혁재도 나를 빤히 쳐다봤다. 자살을 꿈꾸던 (이걸 꿈이라고 해도 되는 건가 모르겠지만) 선아의 우울했던 시절의 얘기도 듣고, 산이가 데려온 사연 많은 개 이야기를 듣다가 10시쯤 일어섰다. 선아가 택시를 불러줬고, 혁재는 택시비 하라며 2만 원을 주머니에 넣어주었다.(집에 와서야 알았다) 부슬비가 여전히 부슬부슬 내리는 밤이었다. 애초에 계획하지 않았던 외유치고는 참 멀리도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