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보단 신년 만찬 (01-03-화, 맑음)

교육감과 특보들의 만찬이 있었습니다. 송도 명가, 찾아가기도 무척 어려운 식당으로 예약되었더군요. 아마도 연수동에 사는 신모 특보를 배려한 것이겠지요. 팔순 고령의 신 특보를 구월동으로 나오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뚜벅이인 나로서는 만찬 장소를 찾아가는 길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지난번 송도 횟집에서 만날 때도 얼마나 헤맸는지, 결국 늦게 도착하기도 했고요. 게다가 오늘 약속 장소인 '명가'는 전철도 가지 않는 구 송도에 있는 집이라서 찾아가기가 더욱 어려웠지요.
그나저나 오늘도 말 없는 보운 형과 막내인 나는 비상근 특보인 선배들의 일장연설을 들어야 했지요. 오모 정무특보는 천성이 다변인 것 같고, 신모 특보께서는 나이 든 분 특유의 "그 당시 내가 젊었을 때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회고담(무용담)이 대부분이지요. 가끔 알고 있는 내용이 반복되거나 한 얘기를 또 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야기를 듣다 보면 배울 게 없는 건 아닙니다. 앞선 세대가 자랑스레 보여주는 '훈장'을 소 닭 보듯 하는 것도 젊은 사람이 취할 예의는 아닌 것 같아 적당한 간격을 두고 추임새를 넣어 드리곤 합니다. 그럼 신나셔서 더 길게 이야기를 펼치는 약간의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그럴 때는 묵묵히 눈앞의 맛있는 음식을 가져다 먹다가 간간이 눈빛이나 고갯짓으로 공감의 의사를 표현해 주면 됩니다. 분명한 건 확실히 경륜이 많은 분의 이야기 속에는 극적인 요소가 많긴 합니다. 그렇게 또 배우는 거지요.
사실 구 송도를 찾을 일은 별로 없습니다. 간혹 친구들의 자녀가 라마다호텔에서 결혼식이 있어 찾게 되는 게 전부입니다. 인천의 명소였던 송도가 이전의 화려했던 시절의 위용을 상당 부분 잃은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술집과 유흥시설로 그 맥은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 룸살롱과 단란 주점은 왜 그리 많은 건지, 그 모든 술집들이 이익을 남기며 유지되는 것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오래전 친구들과 서너 번 송도의 룸살롱을 찾은 적이 있긴 합니다만 오랜만에 찾은 송도에서 만나는 술집들의 휘황한 네온 간판들이 지금은 왜 그리 낯설게 보이던지.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는 게 맞는 모양입니다. 아무튼 구 송도든 신도시 송도든 찾아가는 일이 여간 귀찮은 게 아니지만 맛있는 음식도 먹고 선배들의 회고담을 통해 배우는 것도 있으니 의미 없는 행보는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식당을 나왔을 때 두어 시간 전보다 날이 무척 포근해져 있었습니다. 오 특보가 한잔 더 하자고 제안했지만, 얄짤없이 거절했습니다. 낯선 곳에서는 술 맛이 나지 않거든요. 나는 라마다호텔 근처 정류장에서 8번 버스를 탔습니다. 그런데 유튜브(워킹데드 시즌9)를 보다가 깜빡하고 내려할 만수역을 지나쳐 다섯 정거장을 더 갔습니다. 깜짝 놀라 내려보니 장수동이었습니다. 다행히 바로 길 건너편에 만수까지 가는 37번 버스가 있어서 그걸 타고 되돌아왔습니다. 딴짓하다 정거장을 지나치다니 드물고도 귀찮은 일이었지만, 묘한 낭만도 느껴졌습니다. 집 앞 편의점에서 담배 두 갑과 음료수(맥콜) 한 병을 샀습니다. 현관 문을 열자, 아, 기분 좋은 따스함! 집이 최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