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월드컵 축구ㅣ민예총 이사회 (12-03-토, 잠깐 눈 내리고 흐림)

달빛사랑 2022. 12. 3. 18:17

 

 

지난밤에서 오늘 새벽까지 월드컵 축구 경기를 관람했다. 경기가 열리고 있는 카타르 월드컵경기장을 짓기 위해 노동자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말을 듣기도 했고, 또한 스포츠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경기 일정을 확인해 보거나 따로 시간을 내서 경기를 시청하지는 않았다. 이 추운 겨울, 집단 응원을 위해 광화문에 모여든 젊은이들도 수천 명이라고 하는데, 그 뜬금없는 열정을 나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연히 시청하게 된 한국과 포르투갈의 경기는 예상외로 극적이었다.

 

내내 지고 있다고 경기 종료 몇 분을 남겨두고 역전 골을 성공한 일도 그렇고, 우리나라 16강 진출의 열쇠를 쥐고 있던 (우리와 같은 조의) 나머지 두 팀의 경기 결과가 또한 그랬다. 만약 (우리를 이긴) 가나가 이겼어도 우리는 탈락했고, (우리와 비긴) 우루과이가 한 골만 더 넣었어도 16강행은 좌절됐을 것이다. 자력으로가 아니라, 두 팀의 경기 결과에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는 상황이었다. 우리에게는 다행스럽고 두 팀에게는 불행하게도 가나는 두 골 차이로 우루과이에게 패배했다. 우루과이는 우리와 똑같이 1승 1무 1패였지만, 다득점 순위에서 밀려 우리가 16강에 올라가게 되었다. 얼마나 극적인가? 

 

경기 중계를 마친 3개 공중파와 유튜브 채널에서는 득점 장면을 반복해 보여주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광화문에서 응원하던 젊은이들의 환호하는 장면도 보여주었다. 없던 애국심도 생길 지경이었다. 이래서 독재자들이 스포츠를 통한 대중 우민화에 목숨 거는 모양이다. 화물연대 파업, 민주노총 총파업, 검찰의 전횡과 권력 남용 등 해결해야 할 현안들이 줄줄이 쌓여있는데, 매스컴에서는 온통 축구 얘기뿐이었다. 나도 유튜브를 통해 하이라이트 장면을 반복해서 시청하고 경기 결과에 관한 전 세계의 반응을 찾아보다가 새벽 5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머리와 눈꺼풀만 무거울 뿐 잠은 쉽사리 오지 않았다. 한참을 뒤척이다 6시쯤 되어서야 잠이 든 것 같다.

 

4시간이나 잤을까, 10시 조금 넘어 일어나 빨래와 청소를 한 후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SNS에 올라온 글을 보니 새벽이나 아침에 잠깐 눈이 내렸던 모양이다. 사진상으로는 제법 쌓인 곳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일어났을 때는 이미 모두 녹아 강설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점을 먹고 시립극단 후배 강성숙의 연극을 보러 갈까 생각했는데, 꾸벅꾸벅 졸다가 시간을 놓쳤다. 내친김에 한숨 자고 6시에 열리는 민예총 이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나왔다.

 

이사회의 주요 안건은 총회 준비위원회 구성안. 늦게 도착한 후배 이찬영(부평구문화재단 대표이사)이 깔끔하게 의견을 제시했고, 모든 이사가 그 의견에 동의해 회의는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하지만 풀리지 않는 뭔가가 계속 나를 불안하게 했다. 다들 손을 안 대고 코를 풀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교육청 핑계를 댔지만,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말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불안했던 것일까. 아무튼 뭔가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 때문에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렇게 가서는 안 되는 거잖아’ 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지만, '누군가가 책임질 테지. 사실 나는 남는 시간에 글쓰기조차 버겁잖아. 케세라세라!' 하고 입을 열진 않았다.

 

뒤풀이 장소인 갈매기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서는 부평고 동창회가 열리고 있었고, 우리는 방안으로 소리 없이 들어갔다. 막걸리와 파전, 굴보쌈을 시켜서 밥과 함께 먹었다. 저녁을 겸한 뒤풀이가 끝난 후 대부분은 귀가하고 나는 후배 이찬영과 성창훈, 김종찬이 붙잡아, 논현동 김종찬의 집 앞으로 이동, 회를 먹으며 한 잔 더했다. 그곳에서는 이사회에서 느꼈던 불안함에 관해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들 역시 모두 공감하고 있었다. 얼마 전 기초문화재단 대표이사가 된 찬영이는 약간 들떠있었고, 많은 정세 판단을 내놓았지만, 그중에는 맞는 것도 있었고, 그렇지 않아 보이는 것도 있었다. 시간이 증명해 줄 것이다. 종찬이는 지난번 전교조 지부장 선거와 관련한 내상(內傷)을 완전하게 털어내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사무처장 창훈이도 올해까지만 근무하고 내년부터는 다른 일을 하려는 모양인데, 생계는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는 거지? 이 건(件)도 ‘저들만의’ inner circle에서 해결해 주려나? 그렇다면 다행이고.

 

갈매기에서 혁재와 은준이의 전화를 받았다. 혁재의 전화는 무안 (영택이네 집)에서 건 전화였고, 은준의 전화는 일산에서 건 전화였다. 영택이와 희순이와도 통화했다. 보고 싶은 후배들..... 아무튼 영양가가 있건 없건 내 주변의 지인들은 저마다 한결같이 무척이나 분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