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참혹한 10월의 마지막 날 (10-31-月, 맑음)

달빛사랑 2022. 10. 31. 00:55

 

가을의 가장 아름다운 달 10월은 참혹했다. 154명의 생명을 앗아간 어처구니없는 참사로 마무리된 10월, 이제 한동안 10월이 될 때마다 환청에 시달릴 것이다. 세월호의 비극에서 아직도 자유롭지 못한 우리는 다시 또 집단 트라우마를 앓게 되겠지. 가장 기본적인 것도 지켜지지 않는 나라, 아이가 죽고, 부모가 죽고, 형제자매가 죽어도 그 끔찍한 비극에 관해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나라, 이런 나라에 세금 내고 사는 우리가 너무 가엾다. 이게 나라인가?

 

비극적 현실의 기시감 때문에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마구 화풀이를 해대고 싶은 그런 날이었다. 참혹한 현실을 마주하고도 진영논리에 빠져 머릿속으로 이해득실을 계산하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화가 치밀었다. 애도와 조문에 정치적 차이가 어디 있는가? 누구나 자신의 방식으로 애도하고 조문할 자유가 있다. 적어도 죽음을 정치적 흥정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되는 거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죽음의 의미와 경중조차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달라진다. 짐승의 시간이고 야만의 세월이다. 

 

늦은 밤, 아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인사이동 시기인 요즘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모 부서 팀장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그 말대로 인사가 이루어진다면 내년 1월부터는 총무과 해당 팀으로 자리를 옮겨 근무하게 될 거다. 자신의 조직에서 인정을 받고 있는 아들이 대견스러웠다. 아들은 자신이 스카우트 대상이 된 것은 눈에 띄게 나서지 않고 말이 많지 않으며 일 처리가 빠르기 때문일 거라고 했다. 무엇이 되었든 팀장급이 일부러 찾아와 함께 일해 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어왔다는 것은 능력을 인정받은 것이 아니겠는가. 아들은 굳이 간부급이 나서서 부하 직원을 스카우트하려는 것은 비밀이 많은 부서이거나 일이 무척 힘든 부서이거나 둘 중의 하나가 아니겠느냐고 웃으며 말했지만 아비로서는 뿌듯했다. 조직에 잘 적응해 사는 것도 다행스러웠고, 오랜만에 듣게 된 목소리도 무척 밝아서 좋았다. 결혼에 관한 생각도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기쁨과 걱정이 반반이었다. 하지만 미리 당겨서 고민하고 싶지는 않다. 현재 즐거운 건 즐거운 거고 앞으로 닥칠 어려움은 그때 가서 부딪치면 될 일일 테니 말이다. 

 

이렇게 10월이 가는구나. 다른 때 같았으면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들으며 갈매기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을 텐데, 올 10월은 비통한 심정이 되어 일찍 귀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