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을 생각하다

나는 전혀 쓸쓸하지 않은데 주변 선후배들은 나를 볼 때마다 연애하라고 부추긴다. 연애가 어디 내 의지만으로 가능한 일이던가. 그들은 한결같이 가슴이 격동하지 않는 사람, 소위 말해서 연애 세포가 죽은 시인이 어찌 감동적인 시를 쓸 수 있겠느냐고 말들 한다. 생각해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사랑, 그리움, 외로움 등등의 정서를 우려먹는 시인들의 값싼 감상을 싫어하긴 하지만,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이나 연정의 마음이 생기지 않는 가슴도 시인의 가슴은 아니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예사롭지 않게 불고, 안개 자욱한 도시의 풍경과 눈 내리는 날의 서경을 보고도 전혀 마음이 격동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늙은 사람이다. 시인의 마음은 늙어서는 안 된다. 작고 사소한 일상사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주변의 흔한 만남 속에서도 비범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어야 시인이다. 그것이 가능해지려면 가슴, 다시 말해 마음속 격정이 살아 있어야 한다. 만약 연애가 마음속 격정에 불을 붙일 수 있다면.... 글쎄, 해볼 만한 일이긴 한데, 상상연애와 짝사랑에는 일가견이 있지만, '여자 사람'과 연애해 본 게 하도 오래돼서 '그녀에게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아무튼!
문제는 과연 ‘누구와 연애를 할 것인가’인데, 지인들은 멀리서 찾지 말고 주변에서 찾으라고 말들 한다. 주변이라……. 사실 내 주변에는 명민한 여자 후배들이 많기는 하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임자가 있거나 나를 연정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을 텐데, 내 쪽에서만 연정을 품는다고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언제부터인가 나는 연애에 대해 무척 소심해졌다. 혼자 사는 삶의 느긋함과 편안함이 싫지 않은 것도 있고, ‘그녀가 과연 나를 좋아하겠어?’ 하는, 방어적인 마음이 크기도 하다. 그래서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고 마음속에서 정리해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지인들은 나만 보면 자꾸만 연애하라고 성화다. 하, 이거 참……. 시도해서 거절당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시도조차 안 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라며 자꾸만 충동질해대는 것이다. 과연 나는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몇 명의 후보(?)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그 사람과의 연애를 상상해 본다. 객쩍은 일이지만, 또 누가 알겠는가. 선물처럼 사랑이 시작될지. 사실 그것은 선물이라기보다 기적에 가까운 일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