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어느 날 오혁재는 말했다

달빛사랑 2022. 7. 11. 00:30

 

 

나의 가수 오혁재가 어느 날 말했다.
"형, 내 기타(guitar)가 도무지 울지 않아요."
내가 대답했다.
"네 심장이 울지 않는데 어찌 기타가 울 수 있겠니?"
잠시 생각하던 오혁재가 다시 말했다.
"형 말이 맞아요. 낮술 마시러 가야겠어요."


예보에 의하면 10시에서 12시 사이에 비가 왔어야 했다. 하지만 하늘은 서너 차례 변죽만 울릴 뿐 비를 주진 않았다. 교육감은 오늘 시도 교육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부여로 떠났다. 비서실장도 동행했으므로 나는 식사와 흡연을 혼자 해야했다. 있을 때는 몰라도 없으니 허전했다. 결국 식당에 가지 않고 새로 청에 들어온 복지팀장이 보내온 떡과 과자로 점심을 대신했다. 혼자 하는 흡연은 상관없으나 청사 식당에서 혼자 먹는 밥은 정말 싫다. 모두 부서별 팀별로 모여 앉아 식사하는데, 나만 덩그러니 혼자 앉아 식사하기가 싫은 것이다. 물론 밥 먹는 속도가 빠른 동료들과 식사하다 보면 보조를 맞추느라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이지만, 그래도 직장에서의 식사는 동료들과 하는 게 맘이 편하다. 

 

요즘 다소 한가한 틈을 타서 휴대폰 어플 '삼성노트'에 기록해 놓은 순간의 메모들을 모두 정리했다. 작년 여름부터 현재까지 작성한 89개의 흘겨 쓴 메모들이 저장되어 있었다. 그중에는 송금해야 할 상대의 계좌번호나 주문할 음식 목록 등 일회성 메모라서 저장할 필요가 없는 것도 10여 개가 넘었지만, 나머지 중에는 블로그 일기장에도 올리지 않은 재미있는 내용들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대개가 술이 취해 귀가하면서 전철 안이나 길 위에서 끄적거린 것들이라서 이튿날 자고 일어나면 메모의 존재조차 까맣게 잊게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유치한 내용, 감상의 표백뿐일지라도 당시의 내 심리 상태를 알 수 있는 재미있는 자료가 아닐 수 없다. 가끔은 메모로부터 시적인 모티브를 얻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래서 메모하기를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 요 위에 혁재와 관련한 글도 그와 술 마시다 나눈 대화를 기록한 것이다. 약간 윤문을 하긴 했지만, 문맥은 일치한다. 

 

결국 오후에 혁재에게 전화했다. 두 엄마들의 식사를 챙기느라 여전히 정신없이 바쁘다고 했다. 임시로 동화마을 후배의 집으로 거처를 옮긴 친엄마의 반찬을 먼저 만들어 쟁여놓고, 곧바로 문학동으로 부리나케 넘어와 큰엄마의 식사와 반찬을 챙기는 일은 여간 힘들고 귀찮은 일이 아닐 텐데, 혁재의 한마디는 "괜찮아요. 재밌는데요, 뭐."였다. 평생을 바람처럼 살던 혁재가 엄마들의 말년에 그동안 하지 못한 효도를 몰아서 하고 있는 중인 것 같다. 말로는 툴툴대도 속 깊은 곳의 사랑은 어쩔 수가 없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