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0일(목), 절망을 딛고 다시 시작할 때다
오늘 새벽까지 피를 말리는 초박빙의 접전을 벌였으나 결국 민주당은 패했다. 지극히 무능한 정권이기는 하나 상대 후보의 반동성에 비추어볼 때 그나마 양심적 국민에 의한 통제가 가능하리라는 생각에서 많은 지식인은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다. 그 과정에서 볼썽사나운 모습도 많이 연출되었다. 자신들이 비판하던 상대의 모습을 닮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소속한 모 단체의 단체 채팅방에서는 민주당을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비판 당사자를 몹시 비난하며 마치 사상 검증이라도 하려는 듯 ‘이쪽(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을 지지하지 않는다면 정확하게 견해를 밝히고 나가달라는 겁박도 서슴지 않았다.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며 가장 반민주주의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무척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선거가 막바지로 갈수록 그런 일은 점점 더 많아졌다.
사실 선거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兵家)의 상사(常事)처럼 흔한 일이다. 하지만 그간 내가 믿고 존경했던 인물들조차 평소와는 다르게 초심을 잃고 그렇듯 예민하게 반응한 것은 이번 선거에서 그들이 이전과는 다른 긴장감과 위기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정치 검찰이 만든 적폐의 카르텔이 얼마나 한국 사회를 병들게 했는가를 몸으로 경험했던 사람들이다 보니 검찰총장 출신, 그것도 정치 검찰의 수장이었던 인물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왔으니 얼마나 두렵고 통탄스러웠겠는가. 그러니 예민해질 수밖에……. 그들은 (나를 포함해서) 당분간 집단 트라우마를 겪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본래의 모습조차 잃어버릴 만큼 선거에 올인했기 때문에 그 정신적 외상은 꽤나 오래 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상대 후보는 50% 가까운 지지를 얻은 합법적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 50%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이쪽만 건강하고 저쪽은 모두 반동이라고 말하는 것만큼 위험한 편가르기는 없다. 윤을 지지한 국민 중에도 진지하고 절박하며 건강하게 살고자 고민해 왔던 국민들이 많을 수 있다. 생각이 다르다고 상대를 부정하는 건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위험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180석이라는 의석을 가진 거대정당 민주당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토록 치욕스런 패배를 경험하게 됐는지 그간의 행태를 냉정하게 돌아보고, 잘못된 관행은 과감하게 개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5년 후에도 희망은 없다.
우리는 이번에 수많은 싸움 중 선거에서 졌을 뿐 역사의 전선에서 완패한 건 아니다. 하여, 쉽진 않겠지만,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폐기해야 할 오류와 간직해야 할 합리적 핵심들을 생각하면서 다시 힘을 내야 할 것이다. 그람시의 말처럼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할 때가 아닌가 싶다. 다시 또 새로운 싸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언제까지나 패배로 인한 상실감에 젖어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2022년의 선거 패배를 기성 정치로부터 환골탈태하는 계기로 삼자.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