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홀릭

어제 오후부터 오늘 오전까지, 17부작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을 끝까지 정주행했다. 편 당 1시간씩만 잡아도 총 17시간 이상을 화면 앞에 붙어있었던 셈이다. 정조가 사랑했던 (궁녀 출신 후궁) 의빈 성씨가 주인공인데, 의빈 성씨는 역사적 기록에도 나오는 실존 인물이다. 기록에 의하면 정조는 이 여인을 몹시 사랑했던 모양이다. 성씨가 죽었을 때 지극히 애통해하며 정조가 직접 썼다는 장문의 글(위키백과 참고) 속에는 그녀에 대한 정조의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가 잘 나타나 있다. .
그래서였을까, 이 드라마는 여타의 팩션 사극(역사적 인물+허구적 상상)과는 달리 궁녀들의 삶을 배경이 아닌 중심 소재로 다루었다. 주인공과 궁녀 동기들 간의 우정과 사랑, 궁 안에서의 삶을 얼마나 핍진하게 그려놓았는지 시청을 마쳤을 때는 내가 마치 궁궐 안에서 여전히 헤매고 있는 느낌이었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다. 특히 주인공의 스승 상궁을 맡은 연극배우 전혜진(영화 『기생충』에서 송강호의 아내 역으로 분했던)의 연기는 발군이었다. 주인공 성씨를 연기한 이세영이야 아역 출신에 연기 구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연기력 논란이 있을 수 없지만, 정조로 분한 아이돌 가수 출신 배우 이준호의 연기는 솔직히 놀라웠다. 배우들의 의상과 공간적 배경 또한 너무 아름다워 눈 호강을 했다. 날 좋아지면 고궁을 한 번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왕으로서의 삶과 한 여인의 사내로서의 삶 사이에서 갈등하던 정조와 그의 승은조차 두어 차례 거절하고 자신만의 삶을 살고자 했던 덕임, 두 사람 모두 안타까웠으나 나는 덕임이 더 가여웠다. 제왕의 아내로 사는 삶은 하염없는 기다림의 삶이자, 갇힌 삶이고,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 되어 늘 긴강하고 살아야 하는 삶이다. 자유분방한 영혼을 지닌 덕임이 그러한 삶을 바랐을 리는 만무하다. 그 상대가 아무리 왕이었다손 치더라도……. 결국 이 둘은 결혼에 이르지만, 이내 비극으로 마무리된다. 의빈이 낳은 아들이 다섯 살 되던 해 홍역으로 죽고 딸을 임신하고 있던 의빈 역시 아들이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평생의 연인 정조 곁을 떠나기 때문이다.
시리즈물은 정말 위험하다. 일단 시작하면 끝까지 가야 하니, 책이든 드라마든 완독하고 끝까지 시청하기 위해서는 긴 호흡이 필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엄청난 체력을 갖춰야 한다. 또 가끔 주인공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고 화를 내기 때문에 감정의 소모 또한 만만하지 않다. 물론 시청을 끝냈을 때의 뿌듯한 감동은 그 모든 것을 상쇄해 주기에 충분하지만……. 아무튼 몸무게가 몇 킬로그램은 줄었을 것이다.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 오미크론의 공세가 예사롭지 않다. 전국 감염자가 3만 명을 훌쩍 넘었고 인천에서도 2천5백 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엄청난 증가세다. 팬데믹은 끝난 게 아니다. 사람 만나기가 겁난다. 이 짐승의 시간을 살아가야 하는 모든 이들이 가엾다. 언제쯤 이 긴긴 코로나의 터널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