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왜 이리 자주 날은 흐리는 건지

달빛사랑 2022. 1. 5. 00:02

 

작년 이맘때 나는 뭘 하고 있었을까 궁금해서 지난 10년간의 일기를 훑어봤다. 술을 마시거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고 6년 전부터는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대부분 비슷했다. 어느 때인가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발견하기도 했다.

 

“처음부터 다시 짖어야 한다. 나는 몇 년째 처음부터 다시 짖고 있다. 쓰고자 하는 것들의 이름이, 이름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혹은, 내게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혹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확실히 깨달았을 때, 나는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기 시작했다. 내가 사랑했던 개들은 이미 모두 죽은 뒤였다.”―한유주, 연작소설집 <숨>에서

 

처절하고 처연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무척 고통스러운 행복이라는 걸 사람들은 잘 모른다. 자신과의 싸움이면서도 필연적으로 타인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싸움이기에 어느 순간 자신을 하찮게 여기기도 하고, 정신의 황폐화를 경험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독자는 흔히 결과만을 볼 뿐이다. 자신들이 보고 있는 결과물을 내기 위해 흘린 피는 보지 못한다. 결코 보지 못했으면서도 간혹 본 체를 하기도 한다. 냄새가 난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작가가 그들의 후각을 위해 곳곳에 마련한 의도적인 냄새를 맡을 뿐이다. 물론 그런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사람도 극소수지만……. 흔히 좋다고 평가받는 글을 쉽게 쓰는 타고난 천재 작가는 그래서 덜 행복한 법이다.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을 필요가 없었을 테니, 진흙 속에서 핀 연꽃의 아름다움을 알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하긴 천재들의 희열이란 다른 것을 겨냥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들은 말하겠지. ‘아름답긴 한데, 그래서 뭘 어쩌라고?’ 하는 표정을 지으며 퉁명스럽거나 하찮다는 표정으로. 정말 이기적인 천재들이 있을까. 그들은 다른 범주의 세계를 거니는 자들이기 때문에 흥분도 분노도 기쁨도 슬픔도 다른 방식으로 느끼지는 않는 건지……. 천재들은 그래서 의도치 않게 범인(凡人)에게 큰 상처를 주곤 한다. 상처를 주다니, 이런! 그렇다면 나는 천재가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가. 외로움과 고통과 슬픔을 정신을 고양하는 자양으로 삼을 수 있는 건 범인들이다. 예민한 범인들, 그 예민함이 얼마나 소중한 무기인 줄 알거나 모르거나 상관없이, 예민한 그들, 예민하기만 한 그들이든 예민하기도 한 그들이든 나는 아마도 그들 속에 스며들면 구별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