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촐한 송년 모임, 인천집

간밤에 잠을 설쳐서 다소 피곤한 상태로 약속 장소로 향했다. 예술회관 근처에서 후배 상훈이를 만나 함께 갔다. 친구 선수만 다소 늦는다는 연락이 왔고 후배들은 모두 이미 도착해 있었다. 선수의 제안으로 이루어진 오늘 모임은 소박한 제고 동문들의 송년회였다. 거리두기 때문에 6명 이상이 모일 수도 없었다. 사실 이 친구들은 비교적 자주 봐 온 사이라서 딱히 궁금한 것도 없었다. 누군가가 술 먹자는 구실을 하나 만든 것이고 나머지가 당연히 동조한 것뿐. 다만 그 시점이 연말이라서 송년회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고. 그래도 후배 지동이가 지난번에 이어 오늘도 멀리 일산에서 인천까지 와주어 고맙고 반가웠다. 모두가 하나같이 낼모레 예순인데도 만나면 사춘기 소년들처럼 시끌벅적하다. 그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 이렇듯 만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각자의 삶을 돌아보면 왜 신산함이 없겠는가. 장애가 있는 두 명의 아이를 키우는 후배부터 부모님 모두 치매를 앓고 있는 후배까지, 범인의 상상으로는 쉽게 수용하기 어려운 각각의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렇듯 만나 이야기하면서 생활 속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풀어내는 것일 게다. 모임이 끝나고 자신만의 삶 터로 돌아가면 다시 또 찾아드는 익숙한 쓸쓸함과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로 힘겨워할 게 분명하기 때문에 왁자지껄 웃으며 헤어져도 돌아오는 길은 늘 그들에 대한 연민으로 가슴이 무겁다. 나와의 만남이 그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인천집에서 만난 안주들은 하나같이 맛있었다. 굴보쌈, 웅피조개탕, 덕적굴, 조기구이 등을 먹었는데,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았고 물도 좋았다. 문득 자주 가는 단골집의 안주와 비교가 되기도 했는데.... 그곳은 그곳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지 않다면 왜 내가 한결같이 그집을 찾아가고 있겠는가. 아무튼 인천집이 왜 문전성시를 이루는지 알 것 같았다. 손님이 많은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인천집을 나와서 일산 사는 지동이는 먼저 귀가하고 나머지는 모두 근처 경희네로 2차를 갔다. 생각보다 경희네는 한산했다. 우리가 들어오기 바로 직전까지 손님이 많아 자리가 없었다는 경희 누나의 말이 사실인지 아니면 장사가 시원찮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누나의 거짓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전자일 거라고 믿기로 했다. 9시쯤 경희네를 나와서는 음악을 좋아하는 선수와 상훈이의 제안으로 비틀즈에 들렀다. 후배들은 듣고 싶은 음악들을 신청한 후, 음악이 나올 때마다 "이거 들어봐요. 형. 제가 신청한 곡이에요."라고 말하며 함께 들어주길 원했다. 아는 노래들도 있었고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노래들도 있었다. 나도 정태춘의 '북한강에서'와 '희망가'를 신청해서 들었다. 모두들 소년들처럼 즐거워했다. 10시쯤 되어 친구 선수와 후배들을 남겨두고 먼저 비틀즈를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함께 할 때는 몰랐는데, 집에 도착하니 피곤이 순식간에 몰려온다.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 가능한 일일는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