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흐렸으나 비는 오지 않았다

달빛사랑 2021. 11. 2. 00:33

 

조용히 시작된 11월은 은밀히 내 일상에 스미고 있다. 지난밤 950쪽의 소설 『듄』 1권을 완독했다. 정확하게 3일 만에 읽어낸 것이다. 복잡하고도 엄청난 규모의 서사와 해박한 생태적 지식을 품고 있는 책을 읽어나가는 것이, 처음에는 만만하지 않았다. 외우기 쉽지 않은 사람들의 이름과 작가가 만든 작품 속 신조어들, 그리고 전문적인 과학 지식이 시종일관 이어지는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노트에 메모하거나 작가의 부록으로 붙여놓은 용어설명 부분을 pdf파일로 만들어 참고하며 읽었다. 물론 1권의 내용만을 놓고 본다면 이 소설은 전형적인 영웅 서사의 흐름을 좇고 있다. 비범하게 출생한 주인공이 적대세력으로부터 시련을 겪고 극한의 상황까지 밀려나지만 다양한 조력자의 도움을 얻어 위기를 극복하고 적을 응징한다는 이야기는 너무도 익숙한 서사다. 이 복잡하고도 어려운 소설을 읽으며 방대한 내용과 전문 지식에 기죽지 않고 끝까지 읽어낼 수 있는 이유는 그러한 익숙한 골격과 기시감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서사를 영화 <스타워즈>나 <반지의 제왕>을 통해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이러한 이야기 구조의 장점은 관객들을 극도의 긴장감 속에 몰아넣었다가 일시에 이완시킴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다. 소설 『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시리즈의 마지막 권까지 완독해야만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인물과 상황만 첨가되거나 변화할 뿐 뼈대는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서사 구조는 이야기를 펼치기 쉬울 뿐만 아니라 매력이 있어 작가들이 쉽게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종일 날은 흐렸다. 그러나 비는 오지 않았다. 며칠 사이 비 내리고 나면 계절은 성큼 겨울 앞으로 다가가 있을 것이다. 뭔가를 결정해야 하는 시간, 정리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겁낼 것은 없다. 내일은 또 하나의 심사를 해야 한다. 오랜만에 부평아트센터에 간다. 저녁나절 잠깐 갈매기에 들를까 생각했는데, 책을 읽기로 맘을 먹고 어제에 이어 오늘도 가지 않았다. 갈매기 형은 궁금해하겠지. 이번 주부터는 12까지 영업을 할 수 있으니, 형편이 조금 나아지려나. 갑자기 사람이 많아질 때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자제하려 한다. 지난주 금요일, 결국 교육청에서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와서 모든 부서에 비상이 걸렸다. 백신 접종으로 치명률이 낮아지니 방역에 대한 사람들의 경계심이 크게 느슨해졌다. 위드코로나 시대라지만 나는 코로나바이러스와 ‘위드’ 하며 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