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흐린 주말, 방 정리를 하다가 허리를 다치다

달빛사랑 2021. 10. 9. 00:54

 

정리 벽(僻)이 도졌다. 흐린 주말, 책상 앞에 앉아서 방 안을 둘러보다 책상 옆에 쌓여 있는 책들을 반대쪽으로 옮기고 싶어졌다. 옮겨야 했기 때문이 아니라 ‘싶어졌다’는 게 중요하다. 늘 머릿속이 복잡하거나 일이 풀리지 않을 때 나는 가구를 옮기거나 대청소를 한다. 책꽂이를 정리하고 빨래를 하고 버릴 옷이나 신발을 골라 버리곤 한다. 딱히 절박하지 않은 일도 일부러 벌려놓고 정리를 시작한다. 짝이 맞은 퍼즐을 일부러 흩뜨려놓고 다시 처음부터 정리를 하는 것이다. 힘들고 복잡한 과정일수록 어지러운 생각을 잊을 수 있고 마음의 평정을 찾는다. 성취감도 느낀다. 고민이 많을 때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가구의 위치가 달라지고 컴퓨터의 위치가 바뀌기도 한다. 그동안 많은 양의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서 반대편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옮기다 떨어뜨린 책들로 온 방안은 정신이 없었다. 버리고 또 버려도 시간이 지나면 책들은 다시 산을 이루었다. 구매한 책들만 있는 게 아니라 우편으로 받은 지인들의 신간이 일주일에도 서너 권씩 올 때가 있다. 읽지 않아도 버리기 쉽지 않은 책들이다. 보낸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글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땀방울이 그것에 스며있는지 알기 때문에 더욱 버리지를 못한다. 게다가 지금 남은 책들은 집을 좁혀 오면서 몇 차례 걸러진 것들이다. 냉정한 선택과정에서 살아남은 것들이라 애정이 많다. 본 책들도 있고 보지 않은 책들도 있다. 보지 않은 책들 중에서 언젠가는 보게 될 책들도 있고 그냥 가지고만 있을 게 분명한 책들도 있다. 내 독서의 지향과 마음의 상태, 하게 될 일 등에 의해서 책의 운명은 결정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살아야 할 이유가 충분한 책들이 오늘 내 손으로 한 무더기씩 반대 방향으로 옮겨졌다. 그렇게 여러 차례 책을 옮기다가 허리를 삐끗했다. 평소에도 허리가 좋지 않아 자주 다치고는 하는데, 이 허리 통증의 역사는 제법 길다. 완전하게 낫는 게 아니라 완화되었다가 어느 순간 무리하면 통증이 다시 도지곤 했다. 30여 전에 엑스레이를 찍었을 때, 척추 아래쪽 뼈에 미세하게 금이 가 있었다고 했는데, 수술하기도 어렵고 그냥저냥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무척 절망했던 기억이 있다. 전기에 감전되듯 ‘찌릿’하는 느낌과 함께 찾아오는 하늘이 노래지는 통증, 익숙하다. 이건 병원갈 일도 아니고 약을 먹는다고 쉽게 낫지도 않는다. 그저 시간이 약이다. 진통제를 먹거나 파스를 붙이고, 사나흘 조심하며 허리를 쓰지 않으면 조금씩 통증이 사라지며 원래의 컨디션을 회복한다. 다만 엄마가 있을 때는 찜질을 해주시거나 파스를 제 위치에 붙여주셨는데, 아무도 없는 집에서 옴짝달싹하기도 어려운 상태가 되고 보니 서글펐다. 방안은 정신없는데, 통증 때문에 일을 마칠 수가 없으니 그것 또한 심란했다. 간신히 복대를 찾아 매고, 방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던 책들을 어기적거리며 모두 옮겼다.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고, 물건들을 원위치 시키니 제법 보기 좋았다. 땀이 비 오듯 흘러 켜놓았던 에어컨을 끄고 창문 앞에서 담배를 피웠다. 빗방울이 서너 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희한한 것은 어딘가 아플 때마다 엄마가 생각난다는 것이다. 관절이 안 좋았던 엄마, 다리가 불편했던 엄마, 손가락 마디가 툭툭 불거졌던 엄마는 늘 통증을 달고 사셨다. 안쓰러워 보였을 뿐 나이 먹으면 으레 만나게 되는 통증이라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냉정하고 어리석었던 내 태도가 새삼 떠오르며 부끄러워 눈물 난다. 결국 엄마는 혼자서 통증과 싸우셨다. 많이 외로우셨을 것이다. 나도 이제 통증과 홀로 맞서야 한다. 홀로 아파하고 홀로 서운해 하겠지. 업이라면 업이겠다. 몸은 점점 부실해져 새로운 통증도 나타나겠지. 잠재한 통증이 내 몸을 지배하기 시작하는 날, 그것과 싸우며 엄마 생각 또 하겠지. 나도 엄마처럼 자식에게 민폐를 안 끼치려면 지금부터 건강을 관리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으니 걱정이다. 잡념을 없애려고 시작한 일인데, 잡념 제거는 고사하고 허리 통증만 얻게 되었으니, 이런 망할 주말 같으니라고...... 그래도 시작한 일은 끝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