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폭우로 시작해 폭우로 끝난.....
어제 열두 시가 넘어 잠이 들었는데도 새벽 빗소리가 너무 장해 일찍 잠이 깼다. 창문을 두드리는 우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엄청난 폭우! 다시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일어나 예배 자료를 출력하고 제수씨에게 전해줄 돈을 봉투에 넣어 가방에 챙겨놓았다. 밥을 먹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전날 술 때문인지 라면 등속의 칼칼한 음식이 아니면 넘어갈 것 같지 않아서 꿀물만 한 잔 타서 마셨다. 테라스 문을 열고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담배를 피웠다. 머리가 핑 돌았지만, 기분은 좋았다. 비는 6시가 넘어가면서 다소 약해졌지만, 그치지는 않았다. 9월에, 그것도 추석에 내리는 비는 결코 환영받지 못하리라는 걸 알 텐데 어찌 그리 맹렬하게 내리던지. 장엄한 느낌마저 들었다.
9시, 나를 픽업하러 온 아들의 차가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전날 동생네서 사촌 동생과 밤을 보낸 아들은 잠이 부족했는지 피곤해 보였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비가 내렸다. 아우 집에 도착했을 때 잠시 비는 주춤했다. 추석 감사 예배를 드리기 위해 거실 탁자에 둘러 앉았을 때, 제수씨는 얼마 전 입대한 작은아들 생각이 난다며 잠시 우울한 표정이 되었다. 나 역시 늘 엄마가 앉던 자리가 텅 비어 있어 가슴이 울컥했다. 두 사람의 부재가 만들어낸 공허함이 너무도 크게 느껴졌다. 엄마 없이 맞은 첫 명절이라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간단한 예배를 보고, 준비한 음식을 함께 나눴다. 아들은 기특하게도 어제 작은집에 들를 때, 상당히 비싼 선물 세트를 가져간 모양이었다. 제수씨는 조카의 선물에 무척 감동한 눈치였다. 그런 아들이 내게도 무척 대견하게 보였다. 할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침이 마르도록 손자를 칭찬했을 것이다.
집에 돌아와 아들과 함께 낮잠을 한숨 자고 일어나 저녁을 먹었다. 아들이 좋아하는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끓였는데, 너무 맛있게 먹어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거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를 통해서 아들이 최근, 소설 쓰기에 관심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전부터 소설 읽기를 좋아했고, 우리 집에 와서도 책장부터 살펴보며 자신이 읽지 않은 신간이 있는지부터 살피곤 했다. 내가 미처 읽지 못한 신작 소설을 언급하며 “아빠, 그 소설 괜찮지?” 하고 물어올 때는 글쟁이 아비로서 부끄러웠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아들은 글을 제법 잘 썼다. 나는 내심 아이가 문학 소년으로 자라기를 바라기도 했다. 하지만 커가면서 문학적 글쓰기에 특별히 관심을 보이는 것 같지 않아서 나 또한 그러한 기대를 자연스레 접고 있었는데, 본인은 정작 뒤늦게 다시 문학에 관심이 생긴 모양이었다. 아들이 다시 보였고,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설혹 등단하거나 제도권 방식으로 소설가가 되지 못한들 어떠하랴. 바쁜 직장 생활 틈틈이 소설을 찾아 읽고 소설 쓰기에 관심을 보인다는 건 그의 삶을 그만큼 풍부하게 만들어줄 게 틀림없다. 그래서 글쓰기 선배로서 이것저것 조언을 해주었다. 아들에게 문학적 글쓰기에 관해 조언해줄 날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나에게도 신선한 경험이다. 앞으로 그의 글쓰기가 그의 삶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10시가 넘어가면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지금도 창밖으로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명절에 물난리를 겪으면 얼마나 심란할 것인가. 아무쪼록 묵은 골칫거리들을 청소하는 대견한 비였으면 좋겠다. 가난한 살림을 위협하는 망나니 가을비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비 내리는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어제처럼 새벽까지 이 사나운 우세(雨勢)가 이어진다면 분명 어디에선가 누군가는 물난리를 겪게 될 것이 뻔한데, 걱정이다.
엄마, 수현이도 나도, 그리고 동생네도 모두 엄마의 기도와 염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아 참, 엄마가 키우던 접란이 다시 꽃을 피웠던데, 혹시 엄마가 이곳을 다녀가셨나요? 그렇지요? 그럴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앞으로도 하늘나라에서 우리 가족들을 위해 기도 부탁해요. 우리도 이곳에서 잘 지낼게요. 고마워요.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