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9월 5일 일요일, 당신은 정말 나를 아는가?

달빛사랑 2021. 9. 5. 00:25

 

아침부터 빨래, 청소, 빨래, 청소했다. 묵은 옷들을 빨았다. 여름옷들은 외관이 밥그릇처럼 멀쩡한 얼굴이었다. 그것은 올올히 여름의 땀들을 빨아들이고 어느 순간, 천연덕스럽게 스스로 말렸다. 티 나지 않았다. 나도 몰랐으니까. 그러니 그렇듯 완벽하게 숨은 여름의 흔적들을 찾아내는 게 올바른 일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스스로 흔적을 감추는 것은 상처가 있거나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알면서 굳이 그 흔적과 상처를 헤집는 것이 잔인해 보였다. 그러나 여름옷들의 마음마저 헤아리기에는 내 마음의 용적이 넓지 않았다. 계속해서 “나는 이미 나의 전사(前史)를 잃었다. 아니 잊었다. 투항의 의도는 교묘함이다. 너도 처음에는 몰랐지 않은가?”라고 항변했지만, 나는 옷과 종(種)이 다른 존재, 내가 다른 종의 비극과 천연덕스러움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다. “옷은 옷이고 나는 나다.”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또 한편으로는 여름 내내 나와 한 몸이 되어 지낸 것들을 모른다고 외면할 수도 없었다. 나는 생각보다 여리고 잔정이 많은 사람이니까. 그래서 잠깐, 망설였다. 굳이 빨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다. 여름옷의 위장은 훌륭했다. 빨 필요가 없을 정도로 깨끗한 옷을 빠는 것은 소모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망설였다. 집요하게 여름옷은 나를 설득했다. 나는 설득당할 뻔했다. 세탁기에 옷가지를 모아 넣으면서 나는 미안했다. ‘이건 확실히 결벽이거나, 물을 낭비하는 것이야.’ 생각했다. 물론 생각만 했을 뿐이지, 그 생각 때문에 결심을, 아니 충동을 유보한 건 아니다. 결국 세탁기에 멀쩡해 보이는 (그러나 여름의 흔적을 흠뻑 품고 있는) 여름옷을 집어넣었다.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라고 생각할 줄 알았는데, 세탁기 문이 닫히는 순간, 희열을 느꼈다. 마조히스트가 된 느낌이었다. 세탁기는 나보다 냉정했다. 전사와 족보를 따지지 않고 받아들였고, 터럭만큼의 온정도 없이 회전했다. 여름옷은 회전하면서도 내내 “내가 왜?”라고 말도 안 되는 비명을 내질렀다. 정말이지 잠깐 나는 죄책감을 느꼈다. 코미디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냉정한 세탁기는 40여 분 동안 여름옷을 비틀고, 돌리고, 짜고, 다시 주무르다가 토해냈다. 나는 다시 유쾌해졌다. 그래서 베개 커버와 이불도 빨았다. 빨래는 관성이자 솔직함이다. 하루가 재밌고 보람 있었다. 근데 나를 아나요? 정말 나를 아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