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바쁘면 시간은 빨리 가긴 해

달빛사랑 2021. 6. 14. 00:12

 

이번 주 토요일, 수미정사의 한 스님 출판 기념 북 콘서트에서 교육감이 축사를 요청받은 모양이었다. 출근하자마자 서둘러 축사 원고를 작성해 직접 교육감에게 전해주었다. 이번 주 ‘수요 편지’도 오전에 작성해서 소통협력실로 보냈다. 일찍(7시 30분쯤) 출근했더니 두 건의 일을 처리하고도 여전히 오전이었다. 다소 느긋해진 마음으로 이병률의 시집을 들춰봤다.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최근의 시집은 다소 ‘팔리는 시인’의 범작이라 여겨지는 작품들이 많았다. 하긴 시인이 항상 수작만 쓸 수야 없겠지.

 

퇴근 무렵에 후배의 연락을 받았다. 금주 기간에 약속이 잡히면 참 부담스럽다. 극단을 운영하며 교육연극을 하던 후배는 최근 1인 법인을 만들어 본격적인 기획자로 나섰다고 한다. 부지런하고 일 욕심이 많은 이 후배가 연락할 때는 무언가 상의(부탁)할 게 있을 때다. 이번에도 그랬다. 크게 부담스러운 게 아니어서 도와주기로 했다. 오히려 술을 마실 수밖에 없던 게 부담스럽긴 했지만.

 

시청역에서 후배를 만났는데, 딱히 갈 데가 생각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갈매기를 들렀는데, 내가 금주 중인 걸 모르는 후배는 갈매기 행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좀 일찍 갈매기에 들렀는데도 손님들이 제법 들어차 있었다. 무엇보다 취한 모습의 혁재가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생각보다 많이 취해 있었는데, 나는 요즘 혁재가 술에 취하면 불안하다. 말이 많아졌고, 분노와 욕설이 많아졌고,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얼마 전 다리를 심하게 앓고 나서 주사도 부쩍 심해졌다. 체력이 이전 같지 않아서 그럴 거라 생각되는데, 혁재는 전혀 술을 줄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남의 얘기도 잘 들어주던 친구가 자기 시종일관 자기 말만 늘어놓거나 정치인들에 대한 저주의 말을 쏟아놓는다. 내가 몇 번 눈치를 줬는데, 조심하는 건 그때뿐이지 전혀 달라질 기색이 없다. 그래서 걱정이다. 그렇다고 녀석이 건강을 꼬박꼬박 확인하면서 사는 인사도 아닌데, 그러다 쓰러지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요즘 나도 모르는 고민거리가 생긴 걸까.

 

암튼 그래서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갈매기를 나와 경희네에 들렀다. 사장인 경희 누나는 항상 나의 전작을 살피고 난 후 적당한 안주와 술을 내주었다. 장삿속이 아니라 누나로서 배려하는 마음으로 대한다는 느낌을 매번 받는다. 갈매기에 비해 조용해서 살 것 같았다. 요즘은 시끄러운 곳은 질색이다. 함께 온 혁재가 또 궤변을 늘어놓아 내가 가슴의 열쇠를 잡고 서너 번 비트는 시늉을 했더니, “와, 형이 오늘 한 일 중에 제일 멋있었어요. 이제 말 그만하라는 거죠? 이런 퍼포먼스 생각하다니, 역시 형은 시인이에요.” 하며 풀린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혁재는 먼저 일어나 다시 후배 산이가 와 있다는 갈매기로 갔고, 한 시간쯤 후에 후배와 나도 술집을 나왔다. 많이 먹은 술은 아닌데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지 취기가 빨리 왔다. 전철 역사에서는 잠까지 쏟아졌다. 집에 도착해 샤워하고 주방에 들렀더니 누나가 왔다 갔는지 백숙이 냄비 가득 들어있다. 국물이라도 데워 먹을까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일단은 잠부터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