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물론 나도 민어가 먹고 싶긴 하지요

달빛사랑 2021. 3. 31. 00:23

 

갑자기 많은 일이 있었다. 오후에는 갑자기 K일보 주필로부터 당장 내일 오전까지 칼럼 한 편을 보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뭔 원고 청탁을 이렇듯 무지막지하게 하느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말로는 “문 시인님은 바로 하루 전에 부탁해도 글을 써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이잖아요. 그래서 부탁드리는 거예요”라고 했지만, 속사정은 누군가 원고를 펑크 낸 모양이었다. 이를테면 땜빵 원고를 보내게 된 셈인데, 나는 원고를 보내는 메일 끝에 “다음부터는 이런 원고 청탁 못 받습니다.”라고 써서 보냈다. 예정됐던 원고가 펑크가 나는 게 일간신문에 얼마나 치명적인 상황인지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리고 써서 보낼 형편이 된다면 위급한 상황에 도움을 줄 수도 있는 일이지만, 이건 필자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신문사 스스로 자신의 격을 떨어뜨리는 일이기도 하다. 오죽 답답하고 급했으면 그랬을까 생각하면서도 영 뒷맛이 개운하지 않은 건 어쩔 수 없었다.

 

퇴근 무렵, 교육청 대변인으로부터 최근 불거진 교육문화복합단지 조성 및 제고 이전에 관한 논란에 대해 청과 교육감의 입장을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글을 신문사 기고용으로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서둘러 원고지 10매 내외의 글을 써서 대변인과 출입 기자에게 전달했다. 대변인이 교육감에게 원고를 보여준 후 컨펌을 받으면 신문에 게재될 것이다. 모든 정책에는 반대 의견들이 있을 수 있다. 반대하는 주장의 합리적 핵심을 경청하고 논의 과정에서 이견의 폭을 좁혀나가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다만 일부 몰지각한 정치 건달이나 문화 건달들이 상대편 주장의 핵심 내용을 살펴보지도 않은 채 무조건 반대하면서 그러한 논의 과정을 생략하게 만들고 정당한 의견수렴 과정을 훼손한다는 게 문제다. 이해관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 타당한 근거를 마련하는 것은 모두 자신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한 것이다. 그 과정이 민주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면야 각각의 세력(입장)이 자신의 이해를 관철하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현재 내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상황들은 그렇지 않아서 속상하다. 앞으로 피곤한 싸움을 지속해야 할 것 같아 우울하다.


갈매기에 들러 보좌관들과 비서실장 4명이 저녁을 했다. 갈매기 사장 종우 형은 비싼 안주를 권했지만, 일단은 가벼운 안주로 시작을 했다. 오늘 저녁은 비서실장이 사기로 했기 때문에 나는 옆에서 “민어는 너무 비싸요. 그냥 주꾸미볶음을 먹도록 하지요.”라든가, “소주들 드시니까 시원한 민어탕 어때요?”라고 형이 다시 또 권하면 “그냥 두부젓국탕 먹지요.” 하며 안주를 하향 조정하곤 했는데, 종우 형 편에서는 ‘이 양반이 왜 자꾸 매상에 초를 치지’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술값을 내는 게 아닌 자리에서는 나도 모르게 자꾸 상대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그렇게 말을 하게 된다. 코로나 불경기 상황에서도 갈매기는 그런대로 선전하는 편인데, 종우 형은 가끔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매상을 염두에 둔 제안을 하곤 한다. 장사하는 주인에게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자칫 ‘선’을 넘으면 단골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아직은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고 있지만, 손님 마음은 한결같은 게 아니다. 뭐 생각해 보면, 나의 ‘얄미운 참견’도 오지랖일 수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소심한 A형의 성정인 것을. 나라고 민어가 왜 싫겠느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