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새 보운이 형

어제 심사를 보느라 몸이 파김치가 되어 돌아왔는데도 눈만 무거울 뿐 잠이 오질 않았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비로소 선잠 자듯 잠깐 눈을 붙일 수 있었는데, 두어 시간 잤을까 이내 잠을 깼다. 텔레비전을 켜놓고 뉴스를 보면서 다시 잠을 청했지만 쉽지 않았다. 자는 듯 마는 듯 다시 선잠을 한 시간 가량 잤다. 뉴스 내용이 다 기억이 나는 걸 보면 깊은 잠을 잔 게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비몽사몽의 상태라고나 할까. 5시쯤 되어서 자는 걸 포기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단한 스트레칭과 안마기로 목과 어깨를 안마한 후 누룽지를 끓여서 아침을 대강 먹었다. 1층에 내려가 며칠 전부터 신문사 후배의 부탁으로 '강제 구독'하고 있는 인천일보를 가지고 올라왔다. 대충 들춰봤지만 읽을 거리가 별로 없었다. 철도 역사를 다룬 글은 그나마 볼만 했다. 이제 눈이 침침해서 종이 신문을 읽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지방지에서는 기자를 비롯한 직원들에게 매번 구독자를 확보해 오라고 눈치를 주는 모양이었다. 기사 쓰기도 바쁜 기자들이 영업사원 역할까지 해야 하다니 안쓰럽기 그지없다. 자존심 강한 후배가 내게 구독을 부탁할 때 속으로 얼마나 창피했을까. 신문을 들고 올라와 책상 위에 올려놓고 들춰본 그 짧은 시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11시에는 인천민주화센터에 들러 자문회의를 했다. 센터도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사업을 유보하거나 축소할 수밖에 없없었다. 전시와 교육, 자료발굴과 정리, 현지답사 및 탐방 등이 센터의 기본 사업들인데 현 시국에서는 계획한 대로 진행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도 요즘엔 다양한 SNS와 협력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있어서 영상으로라도 사업을 일부 진행할 수 있다는 걸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간혹 현실의 엄혹함을 핑계로 사업의 기획이나 실행을 무척 수동적, 수세적으로 하려는 일련의 무기력과 방임의 태도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행태가 고착될 경우 코로나가 물러가도 동력을 회복하지 못할까 그게 걱정이다. 인간은 뭔가에 한번 길들여지면 (상황에 순치되거나) 본래의 역동성을 회복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이타적인 일이나 공적 사업을 수행하던 사람들이 더욱 그렇다. 제몫으로 돌아오는 반사적 이익이 없는 일에 몸살이 날 정도로 매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혁명이란 그래서 어려운 거다. 회의를 마치고 들른 중식당, 볶음밥을 주문했는데 뭔 밥의 양이 삼인분 만큼이나 많은지. 음식을 결코 남기는 법이 없었는데, 오늘은 한 공기 분량의 밥을 남겼다. 그렇게 해도 이문이 남는 걸까.
오늘 보운 형은, 아침에는 담배 한 갑을, 회의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는 각티슈와 라면 다섯 봉지를 전해주었다. 담배는 친구가 술자리에 놓고 간 걸 가져온 것이고, 티슈와 라면은 점심하고 돌아오는 길, 일행들과 심심풀이로 들러 본 오피스텔 분양 사무실 앞 천막 안에서 미모의 여성 팀장의 설명을 들어준 대가로 받은 걸 내게 준 것이다. 형은 꼭 어미새처럼 뭔가가 생기면 자꾸 나에게 가져다 준다. 나는 사양 않고 넙죽넙죽 잘도 받는다. "아이쿠, 고맙습니다. 형!" 하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아 그런가. 그렇다면 앞으로도 나는 더욱 환하게 웃어줄 용의가 있다. 미세먼지는 오늘도 '나쁨', 웬수 웬수 이런 웬수가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