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흐르는 날들⑤ : 두 편의 시

달빛사랑 2021. 2. 23. 01:56

살림 | 이병률

 

오늘도 새벽에 들어왔습니다

일일이 별들을 둘러보고 오느라구요

 

하늘 맨 꼭대기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볼 때면

압정처럼 박아놓은 별의 뾰죽한 뒤통수만 보인다고

내가 전에 말했던가요

 

오늘도 새벽에게 나를 업어다달라고 하여

첫 별의 불꽃에서부터 끝 별의 생각까지 그어놓은

큰 별의 가슴팍으로부터 작은 별의 멍까지 이어놓은

헐렁해진 실들을 하나하나 매주었습니다

 

오늘은 별을 두 개 묻었고

별을 두 개 캤다고 적어두려 합니다

 

참 돌아던 길에는

많이 자란 달의 손톱을 조금 바짝 깎아주었습니다


 

첫눈에 반한 사랑 | 비스와나 쉼보르스카

 

 

두 남녀는 확신한다.

그런 확신은 분명 아름답지만,

불신은 더욱더 아름다운 법이다.

예전에 서로를 알지 못했으므로

그들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래전에 스쳐 지날 수도 있었던

그때 그 거리나 계단, 복도는 어쩌란 말인가?

그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로 기억나지 않느냐고-

언젠가 회전문에서

마주쳤던 순간을?

인파 속에서 주고받던 "죄송합니다"란 인사를?

수화기 속에서 들려오던 "잘못 거셨어요"란 목소리를?

- 그러나 난 이미 그들의 답을 알고 있다.

아니오, 기억 나지 않아요.

이미 오래전부터

'우연'이 그들과 유희를 벌였다는 사실을 알면

그들은 분명 깜짝 놀랄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가 운명이 될 만큼

완벽하게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

그렇기에 운명은 다가왔다가 멀어지곤 했다.

길에서 예고 없이 맞닥뜨리기도 하면서,

낄낄거리고 싶은 걸 간신히 억누르며,

옆으로 슬며시 그들을 비껴갔다.

신호도 있었고, 표지판도 있었지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제대로 읽지 못했음에야.

어쩌면 삼 년 전,

아니면 지난 화요일,

누군가의 어깨에서 다른 누군가의 어깨로

나뭇잎 하나가 펄럭이며 날아와 앉았다.

누군가가 잃어버린 것을 다른 누군가가 주웠다.

어린 시절 덤불 속으로 사라졌던

바로 그 공인지 누가 알겠는가.

누군가가 손대기 전에

이미 누군가가 만졌던

문고리와 손잡이가 있었다.

수화물 보관소엔 여행 가방들이 서로 나란히 놓여 있다.

어느 날 밤, 깨자마자 희미해져버리는

똑같은 꿈을 꾸다가 눈을 뜬 적도 있었다.

말하자면 모든 시작은

단지 '계속'의 연장일 뿐.

사건이 기록된 책은

언제나 중간부터 펼쳐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