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이 태산 같은데 왜 이렇게 잠만 오는 건지

두 건의 중요한 원고를 써야 한다. 하나는 김병상 몬시뇰 신부의 추모식에서 낭송할 교육감의 추모사를 써야 하고, 다른 하나는 기호일보 고정칼럼이다. 머릿속에 큰 그림은 그려놨는데 마감이 코앞에 닥쳐야만 생각이 정리되고 글이 나오는 오랜 습관 때문인지 겁 없이(?) 한가한 하루를 보냈다. 금요일에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온종일 잠만 잤다. 일주일 동안 시달렸던 몸은 휴일만 되면 반드시 잠의 절대량을 벌충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평소에는 서너 시간밖에 자지 않아도 하루를 그냥저냥 버티는데, 휴일만 되면 평소와는 달리 잠이 쏟아진다. 주중에는 그렇게 자고 싶어도 오지 않던 잠이, 그래서 곧잘 뜬눈으로 밤새는 경우가 많았던 내가 휴일에는 거의 체체파리에 물린 것처럼 잠이 쏟아진다.
그래도 계간지 ≪작가들≫과 ≪실천문학≫에 각각 두 편씩 네 편의 시를 송고했다. 지난주에 한국작가회의 시 분과 시선집에 실린 시 한 편과 계간지 ≪열린시학≫에 실릴 시 한 편까지 두 주 사이에 총 6편의 시를 출판사에 송고한 것은 나름 선방했다는 생각이 든다. 희한하게 원고 청탁도 그렇고 백일장 심사도 그렇고 일은 특정 시기에 집중적으로 의뢰가 들어온다. 이제 남은 일은 ≪문화현장≫ 원고를 완성하는 것과 동구노인복지관 글쓰기 심사, 학산문화원 글쓰기 심사를 하는 것이다. 이 일들은 전부 수입이 발생한다. 전업 작가 생활을 할 때, 이러한 원고료와 심사비, 각종 회의비는 생활을 지탱할 수 있게 해준 소중한 자원들이었다. 알량하지만 그러한 일조차 없어서 고정 수입이 없는 전업 시인들은 대출을 받거나 현금서비스를 받아서 생활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솔직히 고백한다면 모든 일은 실력도 중요하지만 인간관계(다르게 말하며 다양한 인맥)도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골방에 틀어박혀 자족적인 글을 쓰는 사람은 실력이 빼어나게 좋거나 가진 재산이 많아야 정글 같은 자본주의의 현실을 견딜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을 만나야 일거리도 생긴다. 어차피 문단이나 출판계, 지역 문화계는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관계로 지탱되는 구조다. 수만 명의 예술가 모두를 실력으로 변별하고 그에 따라 청탁을 하고 일을 주기란 불가능하다. 관계의 친소에 따라 파이가 나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물론 그것을 받아먹기 위해 자신의 예술적 자존심을 팔아먹어서야 안 되겠지만, 자신의 창작물을 세상과 대중이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도 아니요, 예술의 속성으로 볼 때 당연한 일이다. 그 옛날 기행을 일삼은 사차원의 시인이나 대중과 거리를 두고 칩거하는 작가를 뭔가 있는 듯 미화해서 바라보는 시선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예술가 역시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자신의 작품을 (심한 경우) 사회로부터 고립시키려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