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또 조문ㅣ유혹을 이겨내고 일찍 귀가한 날
점심을 먹고 후배 홍희의 장인 빈소에 들러 조문했다. 기독교병원 장례식장은 30여 년 전 한양산업 해고자 조경천 씨 빈소를 찾은 이후 처음이다. 그때 친구 강태정이 조경천 씨의 영정 앞에서 목을 놓아 울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리고 얼마 후 태정이도 스스로 목숨을 끊어 황망했던 기억이 있다. 태정이는 화장되어 인천 앞바다에 뿌려졌다. 당시만 해도 바다 장례는 불법이라서 포구에서 배를 타고 멀리 나간 후에야 유해를 뿌릴 수가 있었다. 선장은 포구가 아득히 보일 만큼 멀리 나간 후 유족들에게 부표를 확인시켰다. 그 부표 주변이 장지이고 부표가 그곳을 찾아가기 위한 이정표였던 셈이다.
홍희의 장모도 바다 장례를 치렀고 이번에 작고하신 장인 역시 엄마 옆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안사람인 미나는 차이나타운과 자유공원이 만나는 지점에서 ‘낙타사막’이라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고(高)지대에 위치한 카페 ‘낙타사막’에서는 연안부두 앞바다가 훤히 보인다. 그래서 언제든지 엄마가 생각날 때면 카페 앞 계단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곤 했다고 한다. 이번에 아버지까지 엄마 근처로 가게 되면 부모님 모두를 그 계단에 앉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두 시 반쯤 청사로 돌아와 업무를 보다가 5시 30분에 퇴근했다. 수요일과 금요일은 가족들과 더불어 시간을 보내라고 평소보다 30분 일찍 업무가 끝난다. 퇴근 15분 전쯤 되면 항상 스피커에서 귀가를 종용하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다 그러지는 않았겠지만 과거 공무원 사회에서는 출근부에 이름만 올려놓고 외출했다가 늦은 밤 돌아와 퇴근부에 사인하고 귀가하는 나쁜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시간외 수당(잔업수당)을 타내는 것이었을 텐데, 민원도 많고 이 시스템의 문제점들이 속속 드러나자 일주일에 두 번은 잔업 없는 날로 만들어 빠른 퇴근을 종용하게 된 것이다. 교육부와 지청에서는 배보다 배꼽이 큰 이 시간외수당을 즐이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오늘은 5시 40분쯤 청사를 나왔다. 갈매기에 가서 막걸리 한잔하고 귀가할까 하다가 유혹을 이겨내고 곧바로 귀가했다. 6시 조금 넘어 집에 도착하니 엄마가 “오늘은 웬일로 이렇게 일찍 들어오셨을까‘ 하시며 환하게 웃으셨다. 최근에 내가 한 선택 중 가장 보람차고 대견한 선택이었다. 상현달 빛 참 좋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