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갈매기에서

달빛사랑 2020. 10. 16. 00:26

 

종일 흐렸다. 당장이라도 비가 내릴 듯한 하늘이었다. 바람도 불고 기온도 낮아 온종일 스산했다. 처음으로 사무실 온풍기를 틀었다. 냉난방 겸용 에어컨이라는 걸 오늘에야 알았다며 같은 방 박 모 보좌관은 반색을 했다. 오늘 하루, 전날 교육감 국감을 무사히(?) 마친 덕에 교육청 직원들은 하나 같이 표정이 밝았다. 보좌관 두 명은 국감이 끝난 어젯밤부터 오늘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아침 사무실에서 컵라면으로 해장했다. 점심에는 깜님과 보좌관들 모두가 두부전문집에서 함께 식사를 했다. 난 순두부를 먹었고 깜은 청국장을 먹었다. 마감이 임박한 청탁 시 한 편을 한국작가회의 시분과에 보냈다. 

 

퇴근 후에는 갈매기에 들렀다. 혁재에게 노트북용 USB CD 플레이어를 전해주기 위해서였는데, 혁재는 지인들과 강화도로 놀러갔다고 했다. 할 수 없이 내내 혼자 마셨다. 그런데 두 번째 막걸리 병목을 비틀 때였다. 갑자기 뒤에서 "보좌관님!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교육감 비서실 박 모 주무관이었다. 친구와 술 마시러 왔다가 나를 본 모양이었다. 그야말로 직장 동료를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것이다. 비서실 직원이라 몇 번 보기만 했을 뿐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단골술집에서 그렇게 만나게 되니 놀랍기도 했지만 반가웠다. 처음 출근했을 때 총무과 소속인 그녀에게 여러가지 도움을 받기도 했다. 남자 직원이었으면 술 한 잔 권했을 텐데, 여직원이라서 그만두었다. 그녀와 함께 온 친구도 공무원인 듯했다. 눈매가 선하고 진중해 보이는 여성이었다. 그녀들은 대화를 나누다가 막걸리를 소개해 달라고 해서 내가 먹던 연꽃막걸리, 송명섭막걸리, 해창막걸리를 알려주었다. 두 시간 정도 있다가 그녀들은 돌아가고 나는 한 병 더 마시고 돌아왔다. 술값은 내가 계산해 주었다. 선배는 아니지만 공무원 급수로는 내가 상사고 게다가 내 단골집을 찾은 어린 손님들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