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하이선'이 지나가던 날
태풍의 본대는 제주 서해상을 통과하고 있었지만, 그것의 척후들은 이른 아침부터 도시로 들어와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비와 바람을 풀어놓고 있었다. 아침 테라스 문을 열자 결이 다른 바람이 얼굴을 쓸고 갔다. 여린 가지와 나뭇잎들이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출근길에도 많은 비가 내렸다. 거세진 바람을 견디느라 우산은 안간힘을 썼다. 우산의 안간힘이 손목에 전해졌다.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모두가 출근 전이었다. 공기정화기를 켜고 주변 정리를 하고 나니 다른 보좌관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담배를 피우려 옥상에 올라가 하늘을 보니 도시의 사위를 검은 구름이 짓누르고 있었다. 비는 오전 내내 맹렬했다.
보좌관들은 점심을 구내식당에서 해결했다. 빗속을 뚫고 외부 식당까지 나갔다 올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직원들 모두 같은 생각이었는지 식당은 무척 붐볐다. 식판을 받기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맛은 그저 그랬다. 저렴한 가격을 빼면 특장점이 없는 식사였다.
오늘은 월요일, 갈매기에 들렀다. 오랜만에 정웅이를 만나서 송명섭 막걸리를 마셨다. 한때 단맛이 없어서 좋아하던 막걸리였다. 요즘은 연꽃 막걸리를 마시지만, 오늘 갈매기에는 연꽃 막걸 리가 없었다. 거리 두기 기간 동안 허용된, 영업 마감 시간 9시 정각에 갈매기를 나왔다. 술이 부족했던지 후배들은 편의점과 족발집에 들러 술과 안주를 사 들고 근처 문화예술회관 야외무대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귀가하려던 나는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한 비 때문에 잠시 그 자리에 합석하게 되었다. 젊은이들 너덧 명이 이미 자리 잡고 있었다. 빗소리가 공명을 이루며 무대를 휘돌았다. 운치는 끝내줬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도 빗줄기는 거셌다. 오늘처럼 야외에서 술 마셔본 게 얼마 만인지. 코로나바이러스가 새로운 풍속도를 만들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