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비극을 소설 속에서 마주하다

오래전에 사두었던 김금희의 소설 『경애의 마음』(창비)을 꺼내 읽었습니다. 읽기 전에는 몰랐는데 주인공 경애는 20여 년 전인 1999년 10월 30일 발생했던 동인천역 앞 인현동 호프집 화재 사건의 트라우마를 앓고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날 화재 사고로 고등학생 57명이 연기에 질식되어 목숨을 잃었지요. 그 사건이 인천지역사회에 미친 영향은 상당했습니다. 당시까지 인천의 번화가였던 그 지역 상권이 쇠락하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학교를 벗어나면 딱히 갈 곳이 없는 청소년들의 여가 문화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의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짧은 시간에 그토록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던 이유가 놀란 학생들이 술값을 안 내고 도망갈까 봐 주인이 밖에서 문을 잠갔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돈에 눈이 먼 인면수심의 상혼(商魂)에 시민들은 또 한 번 분노를 삼켜야 했습니다.
아마도 김금희 작가가 이 사건을 소설 속에서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 자신이 당시 희생자들과 같은 또래로서 비슷한 시절을 보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작가에게 직접 들은 건 아니지만 어쩌면 당시 희생자 중에는 그녀의 친구도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또래 친구들의 안타까운 사고 소식은 그 시절 사춘기 소녀였던 작가에게도 강한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사고 당시 인천 지역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서는 중간고사를 끝내고 축제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호프집에 모였던 학생들 역시 인근 학교의 축제에 참석했다 뒤풀이를 하러 왔거나 시험이 끝난 해방감에 동인천으로 머리를 식히러 나왔던 경우가 대부분이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동인천에서 발생한 사건이지만 희생자는 동인천 인근에 위치한 학교 학생들에 한정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일각에서는 “아니, 청소년들이 술집에 들어간 것 자체가 잘못된 거 아니야.”라며 비행청소년들의 일탈이 초래한 개인적 불행이란 프레임으로 이 사건을 해석하려는 기성세대의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당연히 근본적 원인은 파악하지 못한 채 현상만으로 판단한 단견이라고 비판받긴 했지만, 당시 대다수 기성세대가 청소년들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가를 알려준 단적인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지금 사고 지역에는 학생문화회관과 희생자들의 추모비가 들어서 있습니다. 사후약방문이긴 하지만 늦게라도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어른들의 반성과 지역사회의 바람들이 어우러져 지금은 해당 문화회관이 청소년들의 여가와 문화 활동을 위한 믿음직한 공간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건을 기억하고 그것이 남긴 뼈아픈 교훈을 지속하고자 하는, 뜻있는 분들의 노력으로 해마다 추모집회가 열리고 세미나와 간담회가 개최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아마도 아픔을 극복하고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인천 시민 나름의 상처 치유 방식일 것입니다. 일상에 파묻혀 까마득하게 잊고 지내다가 때가 되면 문자나 메일로 전해지는 행사 소식을 통해 다시금 그날의 비극을 떠올리곤 하는데, 그나마 내가 이렇듯 기억을 환기하고 유족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게 된 것은,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후배들을 비롯한, 그날을 기억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많은 분들의 덕분입니다. 늘 고맙고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오늘 소설을 읽으며 주인공 경애와 상수의 아픔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가슴이 자주 먹먹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힘겨운 삶과 아픈 사랑을 응원하기로 했습니다. 소설 속 경애뿐만 아니라 숱한 ‘인천의 경애들’ 또한 모두 다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