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봄을 탓하다

달빛사랑 2020. 4. 4. 22:57

 

봄을 탓하다

 

나의 사랑은 눈 먼 새의 동공에 남은

세상의 마지막 표정이거나 물러진 기억

길고양이 꼬리에 달라붙은 붉은 핏덩이

먼지가 더께로 앉은 오전의 태양

목 부분이 늘어난 보랏빛 스웨터의

보란 듯이 일어난 보푸라기들 숱하게

밤의 등을 떠밀어 겨우 만난 아침의 현기(眩氣)

 

유혹은 벌레의 잠을 깨운

첫 과실의 향기처럼 늘 달콤한 위험이지

기꺼이 절망을 향해 질주하는 우리의 도시처럼

조금 일찍 찾아오는 예정된 상처처럼

가끔 아름답고 자주 덜컹거리는

삯을 받지 못하고 귀가하는 인부의 수레처럼

죽은 줄도 모르고 죽어 있는 고양이 주검 위를

천연덕스레 훑고 가는 무표정한 바람처럼

| 문계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