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요 이름 모를 청년!
주문한 책을 받으러(바로드림 서비스) 교보에 들렀다. 바이러스 때문이겠지만, 매장 안은 너무도 을씨년스러웠다. 매장을 찾은 손님도 서점 직원들도 모두 마스크를 착용한 채 극도로 말을 아꼈다. 공허하고도 불필요한 말들의 홍수 속에서 만나는 이와 같은 의도적인 거리감과 한적함이 싫지 않았다.
교보를 나와 근처 갈매기에 들렀다. 예상대로 손님은 많지 않았다. 막걸리 두 병만 마시고 나오려는데 혁재와 산이가 뒤늦게 왔다. 자리를 뜰 수 없어 한 시간 정도 더 앉아 있었다. 후배 시인 산이는 양치를 하다가 앞니가 빠졌다며 휴지에 싼 앞니를 보여주었다. 이~하며 앞니를 드러내며 웃었는데 빠진 앞니가 있던 자리가 동굴처럼 커보였다. 이가 안 좋으면 삶의 질이 얼마나 형편없어지는 가를 알기 때문에 연민이 들었다. 10시쯤 후배들의 술값을 계산해주고 먼저 나왔다.
지하도 걸어올 때는 위태롭게 비틀거리는 키 큰 청년을 부축해서 전철을 태워주었다. 팔을 잡고 부축을 해주자 “고맙습니다. 여기가 어딘지 도무지 알 수가 없네요.”라며 인사를 했다. 다행히 사람을 몰라볼 정도로 만취하진 않은 것 같았다. 목적지가 동인천이어서 내가 타는 곳에서 함께 전철을 탔다. 전철을 기다리는 동안 뭣 때문에 이렇게 술을 마셨냐고 물었더니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요.”라고 했고, 하는 일이 뭐냐고 다시 물었더니 “저 무용해요. 제법 유명합니다.”라고 대답하며 천진하게 웃었다. 나도 “멋지네.”하며 웃어주었다. 그리고 손을 꼭 잡아주며 “힘내요” 했더니 연락처를 찍어달라며 휴대폰을 내밀었다. 결코 연락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술꾼들은 감각으로 안다) 번호를 찍어주었다. 생면부지의 청년과 연락처를 나누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고민상담도 한 참으로 희한했던 하루였다. 그 친구도 나도 앞으로 웃을 일만 많았으면 좋겠다. 남은 삶이 예술 속에서 보다 아름다워진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