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전야
명절 연휴가 시작되었다. 음력설을 쇠다보니 지난 연말연초에 받았던 새해 인사와 덕담을 다시 받고 듣는다. ‘지난번’은 리허설이고 어제오늘 듣는 인사가 진짜배기 같은 느낌이다. 사실 달력을 바꿔 걸며 많은 반성과 다짐을 했던 건 ‘지난번’이었지만. 그래서 연초(年初)에 다짐했지만 이미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된 계획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예를 들어 음주와 흡연의 횟수를 줄이겠다는 것, 하루 한 시간씩 영자신문을 이용한 영어공부하기, 소설1편과 시집 한 권 읽기 등 이미 틀어지기 시작한 계획들이 바로 그것들이다. 누군가는 계획이란 세우는 맛이고 더 나아가 깨지라고 있는 것이라며 나 같은 계획브레이커들을 위로하는 말을 하기도 했지만 그건 기실 의지박약을 합리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말이라는 걸 안다. 물론 세우는 맛은 충분히 맛보긴 했다.
동생이 차를 가져와 엄마를 모셔간 후 나는 집에 남아 가족예배 준비를 했고 세뱃돈 넣을 수제 봉투를 만들었다. 그리고 세뱃돈을 얼마를 줘야 하나 많은 고민을 했다. 5만 원을 넣었다가 ‘내 형편에 너무 많이 주는 거 아냐? 액수가 뭐 중요해 의미가 중요한 거지’ 하며 2만 원을 꺼냈다가 ‘아냐 요즘 기본이 5만 원이라던데’ 하며 다시 집어넣기를 두어 번 반복했다. 결국 졸업하고 입학하는 조카에게만 10만 원을 주기로 하고 나머지는 다 5만 원으로 통일했다. 제수씨에게 음식 차리는 데 수고했다고 20만 원을 주고, 엄마에게 세뱃돈으로 쓰시라고 10만 원을 드리고…… 엊그제 다인아트에서 들어온 교정료 48만 원을 고스란히 명절 비용으로 모두 지출했다. 가난한 시인 뽕 빠지는 날이다. 부담스럽긴 하지만 일 년에 한 번뿐인 명절이니 감수할 수밖에. 그런데 참 희한한 것은, 다른 때는 늘 내편에서, 나를 중심으로 걱정하고 헤아리고 사고하시는 엄마가 명절 특히 설날만 되면 내 주머니에서 가족들을 향해 펑펑 돈이 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연신 흐뭇한 표정을 짓고 계시니, 나원참. 이번 설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사실 엄마도 명절 치레 비용이 나에게 부담되리라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내가 기죽어 있는 모습은 더 보기 싫으셨을 것이다. 장남으로서 궁색한 티 안 내고 지극히 정상적인(?) 맏이의 모습을 시전하는 게 내심 뿌듯하셨을 뿐이겠지. 그런 엄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게 되길 소망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