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명절전야

달빛사랑 2020. 1. 24. 22:00

명절 연휴가 시작되었다. 음력설을 쇠다보니 지난 연말연초에 받았던 새해 인사와 덕담을 다시 받고 듣는다. ‘지난번은 리허설이고 어제오늘 듣는 인사가 진짜배기 같은 느낌이다. 사실 달력을 바꿔 걸며 많은 반성과 다짐을 했던 건 지난번이었지만. 그래서 연초(年初)에 다짐했지만 이미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된 계획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예를 들어 음주와 흡연의 횟수를 줄이겠다는 것, 하루 한 시간씩 영자신문을 이용한 영어공부하기, 소설1편과 시집 한 권 읽기 등 이미 틀어지기 시작한 계획들이 바로 그것들이다. 누군가는 계획이란 세우는 맛이고 더 나아가 깨지라고 있는 것이라며 나 같은 계획브레이커들을 위로하는 말을 하기도 했지만 그건 기실 의지박약을 합리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말이라는 걸 안다. 물론 세우는 맛은 충분히 맛보긴 했다.

 

 

 

 

동생이 차를 가져와 엄마를 모셔간 후 나는 집에 남아 가족예배 준비를 했고 세뱃돈 넣을 수제 봉투를 만들었다. 그리고 세뱃돈을 얼마를 줘야 하나 많은 고민을 했다. 5만 원을 넣었다가 내 형편에 너무 많이 주는 거 아냐? 액수가 뭐 중요해 의미가 중요한 거지하며 2만 원을 꺼냈다가 아냐 요즘 기본이 5만 원이라던데하며 다시 집어넣기를 두어 번 반복했다. 결국 졸업하고 입학하는 조카에게만 10만 원을 주기로 하고 나머지는 다 5만 원으로 통일했다. 제수씨에게 음식 차리는 데 수고했다고 20만 원을 주고, 엄마에게 세뱃돈으로 쓰시라고 10만 원을 드리고…… 엊그제 다인아트에서 들어온 교정료 48만 원을 고스란히 명절 비용으로 모두 지출했다. 가난한 시인 뽕 빠지는 날이다. 부담스럽긴 하지만 일 년에 한 번뿐인 명절이니 감수할 수밖에. 그런데 참 희한한 것은, 다른 때는 늘 내편에서, 나를 중심으로 걱정하고 헤아리고 사고하시는 엄마가 명절 특히 설날만 되면 내 주머니에서 가족들을 향해 펑펑 돈이 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연신 흐뭇한 표정을 짓고 계시니, 나원참. 이번 설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사실 엄마도 명절 치레 비용이 나에게 부담되리라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내가 기죽어 있는 모습은 더 보기 싫으셨을 것이다. 장남으로서 궁색한 티 안 내고 지극히 정상적인(?) 맏이의 모습을 시전하는 게 내심 뿌듯하셨을 뿐이겠지. 그런 엄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게 되길 소망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