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가을, 바람의 결이 달라졌다
갑자기 날씨가 쌀쌀해졌다. 늦여름의 몽니에 살짝 머뭇거리던 가을이 성큼 내가 사는 마을 안으로 들어왔다. 일요일, 걸음 느린 엄마는 교회에 가기 위해 항상 나보다 먼저 집을 나서고 나는 담배까지 한 대 피고 천천히 뒤따라가곤 하는데, 오늘도 여느 때처럼 느지막이 반팔차림으로 현관을 나섰다가 팔뚝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 다시 들어와 카디건을 걸치고 나왔다. 새벽녘에는 잠결에도 추웠던지 개놓았던 이불을 끌어다 덮었다. 목까지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부르르 몸을 한 번 떨었던 게 기억이 났다. 잠이 덜 깬 중에도 감기가 오면 어쩌나 걱정을 했던 것 같다. 늘 그렇게 잠자다가 오한을 느껴 부르르 떨거나 목에서 이물감이 느껴지고 침 삼키기가 불편해진 경우 자고 일어나면 감기에 걸려 있곤 했다. 다행히 감기는 나를 찾지 않았다. 후배가 챙겨준 건강보조식품이 효과를 보았던 걸까. 사실 나에게 감기몸살은 일정한 시기에 어김없이 찾아드는 불청객 같은 존재다. 아무리 운동을 하고 보약을 먹어도 비껴갈 수 없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 때면 항상 예외 없이 호되게 앓곤 했는데, 올해는 무탈하게 넘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 하나 골골거리는 건 문제가 아닌데 혹여 면역력이 약해진 엄마에게 옮으면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돌아와 보일러를 켰다. 엄마는 “가스비 많이 나오는데 뭐 벌써부터 보일러를 트니.”라고 말을 했지만 지난겨울이 끝나갈 때쯤, 동생과 누나들을 만났을 때 엄마는 “수현 애비가 나 감기 들까 봐 가스비 생각 않고 보일러를 펑펑 틀어줘서 올해는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고 겨울을 났다.”라고 말씀하셨다. 보호받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으셨을 것이고, 덧붙여 공과금이 많이 나오면 내가 힘들어할까 봐 걱정스러워서 그러셨을 것이다. 엄마도 노인이다. 노인들은 일단 실내 공기가 훈훈하고 방바닥이 뜨뜻해야 뼈마디가 덜 아픈 법이다. 그걸 알고 있는 내가 설마 가스비 몇 푼(은 아니고 실제로 겨울에는 20만 원 가까이 나오긴 하지만) 아끼려고 노구의 불편함을 외면하겠는가. 게다가 엄마는 전형적인 충청도 사람이다. 충청도 어른들의 화법은 대개가 반어적이기 때문에 모든 말씀을 액면대로 받아들이면 ‘개갈 안 나는 상황’이 연출되기 십상이다. 충청도 부모님과 수십 년을 살다보면 대체로 발화된 표현 이면의 의미를 읽을 수 있게 된다. 어떨 때는 답답하고, 어떨 때는 의뭉스러움이 야속할 때도 있지만 또 어떨 때는 해당 상황에 대해 돌려 말해 주어 고마울 때도 있다. 슬픔이나 좌절의 상황은 굳이 곧이곧대로 표현하여 고통을 추체험할 필요는 없는 법이니까. 아무튼 올 가을과 곧 다가올 겨울 내내 엄나도 나도 아프지 않고 웃을 일만 많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