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가족공원을 다녀오다
어젯밤 문화단체 인사들 및 인천일보 기자들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술자리를 가졌다. 나는 사실 여 모 기자에게 자료를 받기 위해 참석을 했던 건데, 그게 회복 중이던 몸 상태를 다시 악화시켰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목이 아파 침을 삼키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오늘은 희순이 어머니 발인하는 날, 택시를 잡아 타고 부평 가족공원에 갔다. 아버지 묘역도 살펴볼 요량이었는데, 납골당과 가족묘지 간 거리가 너무 멀어 아쉽게도 들러보진 못했다. 만월당(납골당)에 도착했을 때 희순이의 어머니가 다니던 교회 분들이 와서 발인 예배를 보는 중이었다. 개독소리를 들을 정도로 한국 개신교가 타락했지만 경조사를 챙기는 조직력만큼은 인정해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배를 마치고 교인들은 돌아가고 가족들은 유해를 들고 납골함으로 향했다. 납골함은 다행히 정중앙에 위치한 가슴 높이의 캐비닛이었다. 먼저 봉안되어 있던 부친의 유골함에 어머니의 유해를 함께 넣어 봉안하기로 했다고 한다. 두 분의 생전 금슬이 어떠했는지 모르는 나로서는 고인들이 과연 그것을 바랐을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을 잠깐 했다. 캐비닛에 유골함을 넣어놓고 가족들은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하는 순서를 가졌고, 우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으며, 마지막으로 주기도문을 외우는 것으로 발인(납골) 과정은 끝이 났다.
공원을 빠져나온 일행은 로터리 근처 식당에서 불고기와 냉면으로 식사를 했다. 가족들은 부담을 덜어버린 안도와 영별의 슬픔이 뒤섞인 표정으로 대화를 했고, 자주 웃었다. 식사를 마친 후, 나는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가는 것을 보지 못한 어머니는 “운동 갔다 왔니?”라고 물으셨고, 나는 “아버지 보러 갔다 왔어요.”라고 대답했다. 어머니는 무슨 말인지 정확히 듣지 못하셨는지 다시 묻지 않았다. 샤워를 하고는 한참을 잤다. 잠에서 깼을 때는 왠지 모를 슬픔 때문에 가슴이 먹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