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혈육이란 참 묘한 거 같아요

달빛사랑 2018. 4. 30. 22:00

4월의 마지막 날, 부산에서 온 손님들(누나내외와 조카)과 대공원을 찾았습니다. 먼 길을 다니러 와서 아침밥만 먹고 내려가기가 서운했을 것이고 나와 어머님 역시 그렇게 보내드리기 아쉬웠을 겁니다. 시각장애인인 자형내외가 편안하게 산책할 수 있는 곳은 공원만한 데가 없습니다. 약간의 시력이 남아 있어 윤곽을 감지할 수 있는 자형은 조카 성민이가 그리고 부산 누나는 인천에 있는 셋째 누나가 각각 팔짱을 끼고 공원길을 걸었습니다. 벚꽃은 졌지만 등나무꽃 향기를 공원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카시아 꽃향기 같이 향긋한 냄새였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지만 체력들은 좋은 것 같아서 맘이 조금 환해지기도 했지요. 중학교 때 보고 삼십 대 중반이 되어 다시 본 조카 성민이는 참 마음결이 고운 아이(?)였습니다. 어쩜 그리 자상하고 웃음도 선하던지 괜스레 내가 고마워서 눈물 났습니다. 대기업 농심에 취직해서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고 하니 학창시절도 나름 성실하게 보낸 듯합니다. 공원 산책로를 따라 호수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지하철 타기 쉬운 송내역 근처로 이동했습니다. 그곳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다 헤어졌는데, 12일 간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어찌나 아쉽던지, 어머님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면 부산에 한 번 놀러가겠다고 말을 했습니다. 이건 시간 나면 한 번 놀러갈게와 같은 의례적인 말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분들과 헤어져 집에 돌아왔더니 어머님께서는 몹시 서운한 표정으로 혼자 거실에 앉아 계셨습니다. 모녀 사이에 오랜만에 만났는데 하룻밤 지나고 헤어졌으니 얼마나 아쉬웠겠어요. 잠깐 거실에 앉아 어머니를 위로하고 나는 방으로 들어와 한숨 잤습니다. 어제 조카와 늦게까지 술을 마신데다가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약간 피곤했거든요. 길지 않은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이렇듯 만남의 후유증을 길게 남기는 걸 보면 혈육이란 참 묘한 거 같아요. 아무튼 우리 식구 모두 소박한 행복함을 잃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