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시집 표지

달빛사랑 2017. 12. 8. 13:12



촉박한 일정 속에서도 일들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다. 출판사로부터 시집 표지를 전달받았다. 기분이 묘하다. 한 권의 시집을 묶기까지 나는 참으로 오랜 시절, 다양한 길들을 돌아서 와야 했다. 문학적 게으름 때문이기도 하고, 갑작스레 나에게 닥친 엄혹한 일들의 훼방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일련의 악조건들을 고려할 때 나는 비교적 운이 좋은 경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봄에 시를 출판사에 보내고 서너 달 만에 시집을 출간하는 것은 그리 흔한 경우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상당수의 시인들은 메이저 출판사에서 한 권의 시집을 내기 위해 수년간의 숙고(熟考)와 기다림의 시간을 견뎌오고 있다. 유명 출판사 편집실 책상 위에는 전국 각지에서 투고된 시집 원고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 많은 원고들 중 출판사와 시집출판심의위원들의 심사를 통과해 마침내 시집으로 출간되는 경우는 무척이나 드물다. 자기 돈으로 출판하는 것이야 어려울 게 없겠지만 출판사와 전문 심의위원들의 선택을 받아 책을 내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 시집 출간을 기다리는 누적된 시인들의 수가 엄청나게 많고 그 기다림이 끝내 보상받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이름이 그리 알려지지 않은) 시인들은 긴 기다림과 좌절의 고통에 익숙해져야 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내 주변에는 원고를 보낸 후 3년 째 기다리고 있는 시인도 있다. 그런 분들 앞에서는 출간의 기쁨을 마구 표출하는 것도 왠지 민망하고 미안스럽다. 어찌되었든 이제 독자와 평론가들 앞에 아쉬움이 많긴 하지만 내 시집을 내놓는다. 호평이든 혹평이든 그것은 다음 문제다. 이것은 시작일 뿐 내 시가 도달해야 할 종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겸손하되 치열하게, 많이 읽고 많이 쓰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