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서글프고 안타까운 인천의 문화 지형

달빛사랑 2017. 11. 16. 23:30

그들이 왔다. 서운함을 가득 담은 표정을 하고. 대표이사와 사무처장이 직접 나를 만나기 위해서 구월동까지 방문한 것을 보면 사안이 무척 심각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대표이사는 계속 변죽만 울리며 말을 돌리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찾아온 용건을 이야기했다. “제보가 있었습니다. 민예총에서 재단에 대한 비판과 대응 내용을 정리한 문건을 누군가가 가져와서 살펴봤더니..... 사실과 다른 내용들이 상당수 있었고..... 문 이사님을 존경하고 누구보다 신뢰하기 때문에 이렇게 직접 찾아와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 그 문제 때문이군.’ 나는 방문 목적을 파악했지만 잠자코 이야기만 듣고 있었다.

 

실상 그 문건에는 내가 생각해도 예술가 조직답지 않은 대응의 내용들이 들어있었다. 나는 대책위에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에(아마도 재단 이사인 나를 배려했기 때문에 빼줬을 것이다) 어떤 층위에 말들이 회의 석상에서 오고갔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재단 문제에 대해 독자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정치권과 연계하여 판을 키우자는 의견을 모았던 모양이다. 사실 재단으로서는 이 문제가 문화예술계를 넘어 시민사회와 정치권까지 확대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건을 확인하자마자 부랴부랴 나를 찾아왔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사실 나도 그 건에 대해서는 해줄 말이 별로 없었다. 또한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할지라도 조직에서 결정한 사안에 대해서 나는 따를 수밖에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후배들은 확실히 대표이사와 재단에 대해 나와는 다른 온도차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프레임 안에서 사고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착된 프레임 안에서는 그 어떤 말도 진심으로 받아들여질 리 만무하다. 반면 나는 직접 겪어보고 술도 마셔보면서 상대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표이사는 후배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정치적 야망이나 권력에 아부하려는 심성을 가지고 있는 분이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하지만 이 모든 일련의 과정들 속에는 힘의 관계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모두들 상당히 정치적인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문화예술 종사자들이 그런 정치적 행위를 하는 것이 가슴 아프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이 오랜 관행인 것을. 언제라야 모든 사람들이 순정한 마음으로 만나서 서로 협력하여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나로서는 좌고우면 하지 말고 내 판단을 믿으며 무쏘의 뿔처럼 가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을 것 같다. 안타깝고 서글픈 인천 문화판의 지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