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에 나는 어떤 모습일까
저녁이 되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통증과 싸우는 어머니와 아픈 후배의 안부가 유난히 걱정되는 저녁입니다. 통증과 싸우는 그들의 저녁은 또 얼마나 신산할까 생각하면 마음이 시립니다. 바람은 거리에서만 부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서도 맹렬하게 불고 있습니다.(다인아트 북카페, 5시 30분)
저녁으로 아구찜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후배는 나에게 질문했다. “선배님은 10년 후에 어떤 삶을 살고 있을 거 같아요? 아니 어떤 삶을 살고 싶으세요?”그 말을 들은 나는 10년 후의 삶에 대해 그 어떤 것도 상상할 수 없고, 설사 상상할 수 있다고 해도 ‘매우 그럴 듯한 모습’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후배는 “에이 설마요”하며 믿지 못하겠는 표정을 지었지만 사실 그건 빈말이 아니었다. 한 달 앞의 삶도 예측할 수 없는 내가 10년 후의 삶의 모습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다는 말인가.
최근 10여 년 동안의 나의 삶이란 말 그대로 주먹구구식이었다. 물론 그것은 나의 불성실 때문만은 아니었고 갑자기 내 앞에 닥친 일련의 일들이 너무 버거웠기 때문이다. 모든 것들이 밑바닥부터 붕괴되어 버렸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지 않았던 것이다. 설사 내가 어떤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해도 그때의 일들은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육사가 그의 시 ‘절정’에서 표현했듯이 “한 발 제겨디딜 곳조차 없는” 극한 상황이 닥쳐왔다가 내 의지와 내 능력이 아닌 모종의 힘(그것이 우연이든 신의 뜻이든)에 의해서 탈출구가 열리고 다시 또 극한 상황이 도래하는, 그야말로 불행의 롤러코스트를 탄 것 같은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현기증을 느끼는 것과 간혹 신께 기도를 드리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런 내가 어떻게 10년 후의 삶을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물론 바람의 차원에서 상상해볼 수는 있겠지만, 조건과 상황이 허락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래의 바람을 상상하는 것은 헛된 망상에 지나지 않을뿐더러 그것이 때로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곤혹스러움보다 훨씬 상실감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애초부터 그런 생각을 스스로 차단해 왔던 것이다. 대답을 그렇게 해놓고 보니 내 삶이 괜스레 구질구질해 보이고 가슴이 짠해 왔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호전되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더러 생겼지만 10년의 관성이란 것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도 후배의 말을 받으며 미소를 띤 채로 다시 대답해 주었다. “뭐 그리 큰 욕심은 없고, 글을 쓰고 싶을 뿐이야. 그리고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조금만 북 카페를 운영하면서 책 읽고, 대화하고……. 나이 먹어도 꼰대가 되지 않고 너그럽게 늙어가고 싶어.”라고.
사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것도 ‘엄청나게 큰 욕심’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다만 후배가 물어왔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문제에 대해서 문득 생각해 봤던 것뿐이다. 만약 후배에게 말한 바대로 살고자 한다면 지금부터 구체적인 로드맵을 작성해서 하나하나 준비를 시작해 한다. 돈 문제는 오히려 부수적인 것이다. 맘에 맞는 사람들을 그때까지도 여전히 내 관계의 자장 안에서 품을 수 있으려면 나와 그들 사이에 공감대와 신뢰가 전제되어야 하고, 또한 노탐에 사로잡힌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사고와 독서를 통해 의식의 지평을 넓혀 놓아야하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후배 덕분에 나의 미래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필요를 느꼈다는 것인데, 먼 훗날 좋은 사람들과 건강하게 어울리다 문득 오늘의 이 대화와 결심을 떠올리며 환하게 웃는 날이 꼭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