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첫날 장맛비 내리다
아랫녘으로부터 장마전선은 서서히 북상했다. 보령의 후배가 하늘이 구멍 난 것처럼 쏟아지고 있다는 연락을 해왔을 때 장맛비는 보령을 지나 막 조치원과 평택 근처를 지나고 있었을 것이다. 비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조급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비는 자신의 보폭을 서두르지 않았다. 토요일, 나는 느린 벌레처럼 방바닥을 기어 다니다 제풀에 겨워 잠들기 일쑤였다. 땀에 전 내 이불을 세탁해 건조대에 올리면서 어머니는 잠깐 휘청하셨다. ‘장마철에 무슨 이불 빨래람.’하며 혀를 끌끌 찰 때도 비는 내릴 기미가 전혀 없었다. 점심때까지도 비 소식이 없어 나는 간단히 세수를 하고 소래포구에서 열리는 풍어제 대동굿과 배연신굿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비는 내리지 않고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굿판은 생각보다 조촐했다. 얼마 전 화재가 나 가게를 잃은 소래의 상인들이 가게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천막 아래서 주민회의를 하고 있었다. 구호가 적힌 현수막들이 상가의 곳곳에 붙어있었다. 수협공판장에서 굿을 펼치고 있던 만신의 얼굴에서는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쉴 새 없이 던져지는 만신의 공수는 지저분한 공판장 바닥에 떨어져 뒹굴고 있었다. 불쾌한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만신의 신기(神氣)가 건사하지 않는다면 공수들은 생선비린내와 바닷물에 버무려져 곰삭았을 것이다. 새끼 무녀 두어 명이 만신의 뒤에서 느린 동작으로 연신 부채질을 해댔다. 나는 한 시간쯤 앉아서 굿을 구경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그날막이 없는 소래의 거리에서 사람들은 견디기 힘든 고난을 견디는 수도사의 표정으로 헐떡거렸다.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도 비는 내리지 않았다. 그런데 오이 미역냉국을 만들어 늦은 점심을 먹고 달구어진 오후에 긴 낮잠을 나고 일어났을 때 장맛비의 척후들이 도둑처럼 살짝 다녀간 모양이다. 거리는 대부분 말라 있었지만 자동차 천정과 유리에는 빗물이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그리고 주말의 하루가 거의 저문 늦은 밤, 비로소 장맛비는 본대를 이끌고 이곳을 찾았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장한 빗소리. 오늘 하루 저 빗소리를 듣기 위해 얼마나 많은 간절함을 겪어야 했던가. 그 어떤 음악소리보다 듣기 좋은 빗소리. 이제 저 빗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해야겠다. 며칠 이곳에 묵다 갈는지. 내일 좀 더 밝은 모습으로 비의 얼굴을 만나고 싶다.